1막 1장

옛;날

문화가 권력이고, 취향이 위계였던
시절에 대한 소고(小考)

문화를 생산하고 향유하는 것이 특권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소수의 전문인이 생산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다수인 소비자가 소비를 했으니 자연스럽게 권력을 가진(그것이 힘이든 물질이든 아니면 사회 구조에서든) 이가 더 많은 문화를 누릴 수밖에 없었을 시대였다. 계급이 우선되던 사회에서 문화예술은 계급의 최상위권에서 향유하는 상징과도 같았고 먹고사는 일이 급한 평민 또는 빈곤 계층에겐 문화는 갈망의 대상조차 아니었을 것이다.
산업화 이후 ‘대중’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대중문화’는 특정 계급만이 향유하던 문화의 경계를 허물었다. 하지만 대중문화는 여전히 ‘다수의 대중이 향유하는 질 낮은 문화’로 무시의 대상이 되었는데 문화 취향의 위계가 여전히 신분의 위계와 연결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Y시의 중산층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내게 내 취향,
재즈 아니면 클래식, 타티 아니면 르네 클레르를 물었을 때
그것만으로도 내가 다른 세계로 건너왔음을 깨닫게 됐다.’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남자의 자리 La Place> 1984BOOKS. P59

202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1940년생 아니 에르노(Annie Ernaux)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한순간을 이렇게 서술했다. 프랑스의 빈민층이었던 그녀가 마주한 중산층과의 벽이 바로 ‘취향’이었다. 또 다른 작품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 1991)>에서 그녀는 중산층 남편을 만나 중산층으로 살게 되면서 클래식을 듣게 되었다고 표현했다. 1970년대까지도 프랑스에서는 중산층과 빈민층을 구분하는 경계가 클래식과 대중가요에 대한 취향의 차이였다는 말이다.

취향의 사전적 의미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다. 17~18세기의 유럽에서 취향은 대상의 미묘한 미적 품질을 받아들이는 특별한 능력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칸트(Immanuel Kant)는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1790)>에서 ‘취향이란 미(美)를 판정하는 능력’이며 ‘미적 판단은 취향 판단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취향 판단’ 내지 ‘취미 판단(Geschmacksurteil)’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그의 책 <구별짓기(La Distinction, 1979)>에서 “우리가 취향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회적으로 자신보다 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분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징이다. 출신 배경이나 학벌이라는 요인이 사회적 가치는 물론이고 예술에 대한 취향마저도 결정한다”라며, “한 개인이 어떤 문화를 선호하는가의 여부는 그의 계급, 직업, 학벌, 혈통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취향은 그런 점에서 개인이 살아온 사회적 조건에 의해 구성되는 미적인 성향 체계라는 의미다.

부르디외는 1967년~1968년 사이 프랑스 3개 도시에서 다양한 사회적 대표성(성별, 소득, 환경 등)을 가진 1,200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문화 선호도에 대해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그는 개인의 취향이 개인에게 머물지 않고 하나의 계층을 형성하는 것을 발견했고, 계급별 사회적 취향이 개인의 취향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찾아냈다.

조사에서 보면, 자본의 대부분을 문화자본의 형태로 취득하는 중간계급은 취득하는 문화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자본이 빈약한 편이다. 그들은 체스를 하고, 오페라를 관람하며, 미술관을 방문했고 <르 몽드>를 읽었다. 앤디워홀, 반 고흐를 좋아하고 스트라빈스키를 들었다. 반면 자본가와 경영자들로 이루어진 상류계급은 자본의 대부분을 경제 자본으로 소유하고 있어 고가의 미술품 수집, 골프, 요트를 즐겼다. 이들은 경매로 골동품과 미술품을 구입했고 호텔에서 휴가를 즐겼다. 민중 계급인 농민이나 노동자는 승마가 아닌 경마를 즐기고 클래식보다는 민중가요를 선호했다. 미술관은 그들에게 흥미롭지 않지만, 유명 화가의 그림이 프린트된 머그컵은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문화자본이든 경제 자본이든 그러한 자본의 총합이 빈곤했고, 한쪽의 자본을 늘리기 위해서는 다른 한쪽의 자본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본 자체가 부족해 어느 한쪽의 자본을 늘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중간계급 이상부터는 예술에 대한 해석 능력이 발현되어 미술관, 박물관에 취미를 갖는 편인 반면 중하위 계급으로 내려갈수록 노동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는 가벼운 문화를 선호한다고 했다. 그는 또 민중문화는 즐기는 데 필요한 노력이 덜한 대중문화, 매스미디어, 도박, 중독성 있는 게임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위계와 같던 취향의 의미는 대중매체의 등장과 확대로 조금씩 옅어졌다. 대중매체가 문화 소비자와 문화 생산자 사이를 중개하는 문화 분배와 소통의 체제로 자리하면서 누구나 문화를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취향은 더 이상 위계를 대표하지 않는다. 문화예술의 대량생산 체제는 한때 순수 예술이 그들의 영역을 더욱 고수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대중이 예술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부추겼다. 덕분에 문화예술 장르의 경계가 사라지고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하면서 대중은 더욱 다양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문화예술의 취향은
‘누가’가 아닌 ‘어떻게’로 구분되며,
‘우열’이 아닌 ‘다름’의 표현이다.
그리고 우리는 취향을 선택하는 시대에 산다.

참고문헌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상)(하), 새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