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Dalseo

People

‘밤의 화가’

김종언

밤새(145.5 x 98.0㎝)

밤새(72.7 x 53.0㎝)

밤새 목포 서산동(90.9 x 65.1㎝)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고 하니 신이 났나보다. 고향인 봉화에는 그림과 연관되는 게 전혀 없었지만, 친구들 몇 명하고 만화책 등을 보고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겨했다. 미대로 진학해 서양화를 전공한 뒤 30년 가까이 달서구 상인동에 터를 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밤을 그리니 밝아지고, 사람이 없으니 더 많은 사람 보여

상인동 화가의 화실을 찾았을 때, 마치 사진을 찍어서 인화해 놓은 듯 푸른 회색의 눈 오는 밤 그림들이 화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낮이나 비 오는 밤, 달이 뜬 밤들은 찾을 수 없었고 오로지 눈 오는 밤 그림들뿐이었다.
화가가 처음부터 눈 오는 밤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낮 풍경을 그리고, 비 오는 거리, 안개 낀 아침 등 다양한 구상화를 그렸다. 그런데 밝은 낮 풍경인데도 어두웠다. 그래서 밤을 그렸더니 오히려 ‘밝다’는 반응이었다. 그때부터 밤을 그리기 시작했다. 비 오는 밤과 안개 자욱한 밤을 그렸지만, 눈 오는 밤이 제일 좋아 20년 가까이 눈 오는 밤만 그리고 있다.
김종언 화가는 “맑은 날이나 비 오는 밤 보다는 눈 오는 밤이 더 이야깃거리가 많고, 비슷한 그림을 계속 그려도 생각이 멈추지 않고 눈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에 눈 오는 밤을 그리고 있다” 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까지 눈 오는 밤 풍경을 몇 점이나 그렸는지 물어봤다. 1년에 대략 50~60점씩 20년 가까이 그렸으니, 족히 1,000점은 그렸을 것이라고 했다.
눈 오는 밤의 풍경에는 사람이 없다. 눈을 씻고 그림을 쪼개 봐도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왜 사람은 그리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화가는 “사람을 그렸더니 사람에 너무 많이 초점이 가고, 이야기가 좁혀지더라. 사람을 그리지 않으니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보이고 더 많은 이야기가 펼쳐지더라” 라고 말했다.
화가의 말처럼 그림에는 사람이 없으되, 사람 내음이 가득하다. 눈 오는 추운 겨울임에도 따스함으로 충만하다.

그리는 행위는 대화의 연속

요사이 대구의 겨울은 눈이 드물다. 그래서 눈 오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일기예보를 듣고 휴대전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실시간으로 눈 오는 광경을 보고 차를 몰아 달려간다. 몇 시간을 차로 달려 적당한 곳에 주차한 다음, 구도가 좋은 곳을 찾아다닌다. 모두가 잠들고 가로등만이 내리는 눈을 비추는 골목길을 홀로 걷는다. 눈으로는 화폭에 담을 물건을 찾고, 머릿속으로는 담벼락 너머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수십 년 동안 켜켜이 쌓여있는 골목길의 흔적을 상상한다. 새벽녘 이방인의 인기척에 잠을 깨울까봐 숨죽여 걷지만 개 짖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리고, 혼비백산이 돼 냅다 달리다 넘어져 다치기도 했다.
목포에는 수십 번 가봤다. 세월이 비켜간 듯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유달산 아래 비탈진 동네가 유달리 정이 가, 목포에 눈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달려간다. 가서 밤새 사진을 찍고는 화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화실에 홀로 앉아 사진 속 집들과 골목을 기웃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그 이야기 마디마디를 화폭에 담아낸다. 그래서 화가는 ‘그리는 행위는 곧 대화의 연속’이라고 한다.

그림의 무대인 목포나 광주에서 전시회 할 터

목포 그림이 많다 보니 전시회를 할 때마다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을 자주 듣는다. 고향은 커녕 목포에서 전시회 한 번 연 적이 없으니 그 물음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고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목포나 광주에서 전시회를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기분이 묘한 이유를 물었더니 화가는 “감사함과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말했다.
화가는 집들과 골목, 동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그림의 배경이 되어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또 그림의 실제 배경은 현재 재개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머지않아 지금의 집도, 골목도, 마을도 모두 사라지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눈 오는 밤 목포’ 그림들을 보면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는 것이 화가의 바람이다. 김종언(金鐘彦)은 1965년 봉화에서 출생해 영주고등학교와 계명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달서구 상인동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각종 공모전 특선 11회와 입선 6회, 대구시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