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달서 바이브

때로는 순수하게 때로는 매혹적이게

세계사 속 장미

꽃 이름을 떠올려 보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꽃 이름이 뭘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장미를 꼽을다. 장미는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하고 사랑받는 꽃이다. 사랑을 고백할 때에도, 기쁜 일에 축하할때도 빠지지 않는 주인공 장미. 단순히 꽃을 넘어 장미라는 이름으로 ‘은유’가 되고 ‘신화’가 되고 ‘상징’이 된다. 우리의 역사와 함께해온 장미가 가진 의미들을 찾아본다.

서양화

화려한 장미 놀음의 끝은 비극

‘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

신화

그리스신화 속 피어난 장미

‘아프로디테의 사랑과 장미’

로마 제국의 제23대 황제 헬리오가발루스는 미치광이 황제로 유명했다. 화가 로렌스 알마 타데마는 황제의 전기에서 영감을 얻어 ‘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라는 작품을 그렸다. 황제와 귀족들의 화려한 연회,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다양한 분홍색의 장미꽃잎이 마치 호화스러운 열락의 순간을 담은 듯 하지만 사실 이들의 끝에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장미 속에 묻힌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뿌려지는 장미에 덮여 질식해 죽기 때문이다. 헬리오가발루스는 ‘장미를 얼마나 뿌리면 사람들이 죽을 수 있을까’라는 망상을 실제로 옮긴 괴짜 황제였다. 실제로 헬리오가발루스 황제는 연회장에서 제비꽃과 다른 꽃들을 마구 퍼부었으며, 무작위로 쏟아지는 꽃잎에 사람 몇 명이 질식사했다. 화가는 제비꽃 대신 장미꽃으로 바꿔 그렸다. 19세기 영국에서 퇴폐와 향락, 유혹과 매혹의 상징이 바로 장미였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장미는 사람들의 삶 속에 무수한 이야기들을 만들어왔다. 그리스 신화 속에도 장미가 등장한다. 사랑과 미를 관장하는 여신 아프로디테는 장미와 유독 연관이 많다. 아프로디테의 탄생과 함께 장미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붉은 장미가 생긴 이야기에도 아프로디테와 관련이있다. 미소년인 아도니스에게 첫눈에 반한 아프로디테. 그녀의 사랑을 받은 그를 질투한 전쟁의 신 아레스가 멧돼지로 변신해 아도니스를 공격했다. 그를 구하러 달려가다 가시나무에 발을 찔린 아프로디테가 흘린 피는 그때까지 흰색뿐이던 장미를 붉게 물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탄생한 게 바로 매혹적인 붉은 장미라는 이야기가 있다.

소설

소설 속 ‘존재’의 은유가 된 장미
‘장미의 이름’

20세기 최고의 지적 추리 소설로 불리는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14세기의 한 수도원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설이다. 독실한 원로 수도사가 희극적 성격의 책이 신앙에 위배된다는 생각에 책 페이지마다 독극물을 발라 책을 읽는 수도자들을 교묘하게 살인하는데, 주인공이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책 제목의 장미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작가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힌트를 남겼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움베르트 에코다운 가장 모호하고도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장미를 은유적 존재이자 독자들이 스스로 상상하는 장치로서 남겨두었다.

로고

브랜드의 가치이자 심볼이 된 장미

‘랑콤’

1935년 프랑스의 조향사이자 미용 전문가인 아르망 프티장이 고급 향수 브랜드인 ‘랑콤’을 론칭했다. 자신의 국가인 프랑스와 여성 그리고 꽃을 좋아했던 아르망은 어떤 언어로도 발음하기 쉬운 브랜드 이름을 고민하다 장미가 많이 피는 프랑스 투렌느 지방의 랑코스메라는 고성에 마음을 빼앗겨 랑콤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으며 품위를 잃지 않는 장미는 ‘여성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을 제공한다’는 랑콤의 설립 취지와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꽃이다. 초창기 랑콤 로고에는 장미·연꽃·아기천사 로고를 혼합해 사용하다가 단순화된 골드 장미를 전 제품에 사용하게 됐다. 현재 랑콤 로고에는 장미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제품에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장미문양이 새겨져 있다.

역사

붉은 장미와 흰 장미와의 왕권다툼

‘장미전쟁’

1455~1485년에 걸쳐 영국의 랭커스터가와 요크가 사이에서 벌어졌던 왕위 쟁탈전을 ‘장미전쟁’이라 한다. 그 이유는 랭커스터가의 문장이 붉은 장미, 요크가 문장이 흰 장미였기 때문이다. 요크 공작 리처드는 헨리 6세의 발병을 틈타 1453년 랭커스터가의 중심 세력인 서머셋 공작과 싸워, 장미전쟁을 일으켜 그를 멸하였다. 이후에도 두 가문의 긴 전투 과정에서 많은 제후와 기사가 몰락하고 튜더 왕조 헨리 7세에 의해 잉글랜드의 절대주의가 시작되었다. 랭커스터의 방계 가문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튜더 가문의 상징은 붉은 장미가 되었다. 튜더 왕가는 혹독한 왕권 쟁탈 전쟁을 벌였던 두 가문의 유대를 나타내기 위해 흰색과 빨간색을 모두 품은 장미를 집안의 대표 문장으로 만들게 되었다.

음악

장밋빛 인생
‘라비앙 로즈’

20세기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대표곡으로 알려진 ‘라비앙로즈(La VieEn Rose)’. 영화 <인셉션>, <스타 이즈 본> 등 여러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회자되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곡이다. ‘라비앙로즈’는 프랑스어로 ‘장밋빛 인생’을 뜻한다. 낙관적이고 희망이 가득한 아름다운 인생을 붉은 장미에 빗대어 표현한다. 이 노래를 부른 에디트 피아프는 애석하게도 자신의 대표곡과는 다른 인생을 살았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 곡예사인 아버지를 따라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고 그 뒤 세계적인 샹송 가수로 성장했다. 그녀의 노래는 자신의 삶 속에서 느낀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 사랑의 기쁨과 상처가 녹아 있기에 더욱 강력한 호소력과 진실성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