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1장

시선

청년에게 지역문화는
어떤 의미이며 왜 필요한가
김인혜 더폴락 공동대표

청년에게 지역문화는
어떤 의미이며
왜 필요한가
김인혜 더폴락 공동대표

글. 김인혜 더폴락 공동대표

“대구 로컬과 관련된 책은 없나요?”

서점을 방문한 이가 그런 질문을 할 때면 내심 반갑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지역문화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일 경우가 대부분이여서 동료의식이 들기도 하고,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슬그머니 어느 지역에서 오셨는지 물어보며 말문을 튼다.

학창시절인 중·고등학생 때는 지역문화를 체감하지 못했다. 중학생 때는 만원버스에 실려 등하교 하느라 진을 뺐고, 하교 후에는 학원을 가거나 친구관계에 몰두했다. 그 세계가 모두였다. 고등학생 때는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 늘 잠이 부족했고, 모든 신경은 수능 이후와 불확실한 미래에 가 있었다.
물론 등하교 때 빼놓지 않고 만화·책 대여점을 들렀고, 극장을 다녔고,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이 열리면 공연장을 찾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래서 ‘지역문화’라고 하면 어김없이 대학시절로 돌아간다. 우리 지역에 어떤 활동들이 벌어지고 있구나 감각하게 해준 것은 무엇보다 <문화신문 안>이었다. 대구 지역 내 다양한 문화소식과 비평을 실은 잡지로 판형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손바닥 폭만큼 좁고 작았던 그 잡지는 ‘지역 문화’라는 잡히지 않는 단어를 명확하게 손 안에 들려주었다. 중철 제본에 줄간이나 글자 포인트도 들쭉날쭉이었지만 그 작은 잡지 안에 빼곡하게 기사가 모여 있었다. 가명을 쓴 사람들의 날선 영화 비평도 있었고, 인디 공연 정보와 처음 듣는 공간에서 열리는 독특한 전시 소식 등도 있었다. 영남일보와 매일신문에도 문화코너가 있었고 대구문화도 있어 지역문화 기사를 접했지만, 독립·인디 문화를 다루며 기자의 개성이 진하게 배어있는 <안>의 기사는 특히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잡지를 가이드 삼아 전시를 보러 가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필진을 기억해두고 그 필진의 기사만 먼저 골라 읽기도 했다.

그리고 클럽헤비를 비롯한 많은 공연 클럽들이 있었다. 이 클럽 저 클럽 다니며 공연도 보고, 큰 화면으로 괴상한 뮤직비디오들을 함께 보고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셨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 그 중에는 그저 괴인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상한, 또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을 괴상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술영화전용상영관 동성아트홀이 있어 예술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자리는 늘 넉넉히 비어있어 예매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늘 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동성아트홀릭 모임을 가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솟대를 가득 채우던 시네필들. 그리고 독립영화협회와 대구단편영화제가 있었다. 친구들과 매회 단편영화제를 같이 보러 갔고, 재미난 상상력에 키득대기도, 현실을 대변하는 목소리에 눈물 짓기도 했다. 이상한 것들이 깃들 수 있는 공간들이 있었고,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게 했던 기획자와 예술가들이 있었다. 더폴락을 시작하게 된 것은 내가 경험했던 지역문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늘 생각한다.

친구들과 함께 공연도 보고 영화도 보며 온갖 허무맹랑하고, 재밌겠다 싶은 상상을 종종 나누었다.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기획들을 굴리면서 대구에 재밌는 게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들을 직접 해보자고, 그런 생각으로 독립출판물을 소개하는 서점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더 모아보자고도 생각했다. 친구들과 함께 공간을 시작하기로 했을 때는 대학은 졸업한 지 한참 지났고, 모두 각자의 일터가 있었다. 운영이나 수익에 대해선 깊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밑바닥에 대구 대안공간과 인디 독립문화가 있었다.

대명동에서 처음 서점을 시작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가 디딘 곳, 대명동에 주목했다. 소극장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했고, 우리가 그곳에 터를 잡았던 이유와 같은 이유로 예술가나 뮤지션들이 연습실을 잡았던 곳이기도 했다. 연습실을 두드려 어떤 팀들이 그곳에 기반하고 있는지 조사하면서 <그쪽이 좋아요:그 거리, 그리고 사람들>을 책으로 만들고, 그 후에는 대명동의 다양한 예술을 다루는 <대명아트매거진, 담>을 내기도 했다. 우리가 위치한 골목 내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작은 동네 축제 <단잠>을 열기도 했다. 대명동에서 2년이 좀 넘는 시간을 보내고, 북성로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는 매일 드나드는 북성로 동네에 주목하게 됐다. 북성로는 어르신들의 놀이터로 멋진 패션의 어르신들을 담는 <북성로 맵시>를 출판하고, 북성로에 위치한 오래된 다방을 각 작가들이 탐방하듯 다녀와 쓴 글로 <다방 소파에 기대어>를 책으로 냈다. 우리가 늘 인디음악이나 독립영화를 좋아했기에 인디음악 웹진 ‘빅나인고고클럽’과 같이 대구인디음악관련 책을 함께 작업하기도,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와 20주년 기념 책을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가 출간한 책 중 지역 콘텐츠를 담은 책들이 많아졌다. 내가 사는 곳이라 공기같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별 것 아니지만, 가까이 있기에 더 잘 알게 되고 들여다볼수록 특별하고 매력적인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지역 청년으로 ‘지역 문화’를 접하고 즐기다가, ‘지역 문화’를 다루고 또 그 안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 더폴락은 올해 11년이 되었다. 우리가 문을 연 해에 오던 중학생 손님이 대학생이 되어 군대를 다녀왔고, 함께 서점을 열었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시간이 흘렀다.
그리 오래는 아니지만, 그동안 동료들이 생겼다. 독립서점들이 하나 둘 생겼고, 독립출판을 하는 동료들과는 타지역에서 열리는 아트북페어에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던 이들이 절친한 친구가 되어 책 편집을 함께 하기도 한다. 동료가 생긴다는 것은 가능성의 세계가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 지역에 관련 문화가 더 풍성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먼저 시작하지 않았더라도 또 다른 서점들이 문을 열었을 테지만, 지역에 독립출판 서점이 있었던 일이 분명 작은 영향이라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화신문 안>을 읽었던 일이 내게 영향을 주었듯이. 더폴락을 드나들면서 책을 만들게 되었다거나 책방을 열게 됐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고맙고, 또 그런 말을 들을 때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동료들에게 영향을 받고 영감을 얻는다. 공기 같아서 잘 몰랐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환경 안에서 영향을 받고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한다. 특히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던 인디 독립문화에 한정해 말했지만, 몇으로만 언급할 수 없이 많은 지역의 문화가 있고, 미술관, 문화회관 등 문화기반시설의 역할과 영향도 크다. 크고 작은 다양한 영역의 문화들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지역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지역 안의 목소리와 활동들이 계속 이어질 수 있게, 대구가 품이 넓은 곳이었으면 한다. 작은 축제들이 계속 이어지고, 각 문화 영역 안에서 씬이 형성되고, 유지되고, 새로운 것이 다시 유입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다양한 문화가 활발히 일어나고 다음 사람들이 또 다음 꿈을 꿀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 대구 안에서도 가능하구나 생각할 수 있게. 서울경기권은 별도로 두고, 지역의 유사성이 있기는 하나 들여다보면 지역의 사정과 환경은 각기 다르다.

처음 꿈꿨던 것을 해냈냐고 생각하면 그렇지 않아 아쉽고, 한편으로는 많은 일이 돈과 정치의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대구문화판은 폐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지형의 변화가 크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실망도 있다. 비판으로 더 개선해야 할 문제도, 아쉬운 점도 많다. 그럼에도 멋진 일들을 만들어오신 선배들, 단체와 기획자, 동료들, 또 개개인들이 만들어 낸 성과가 있고, 다양한 예술인과 문화인들의 작업에 영향을 받아 또 다른 멋진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대구 인디씬 내에도 걸출한 뮤지션과 단체들, 독립영화판의 성과, 스트릿댄스 씬, 많은 독립서점이 새로이 생겨나고 독립출판씬이 형성되었듯이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미미해보여도 들여다보면 지역문화가 풍성하다. 지금은 유튜브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sns로 모두와 연결이 가능하지만 여전히 지역 내에서 호흡하듯 겪어서 아는 것, 직접 겪어 아는 지역문화는 각 사람에게 단단하게 자리한다.

“대구 로컬 관련된 책은 없나요?”라는 질문에 흔쾌히 추천할 수 있는 책들이 많아 흐뭇해질 때도 있고, 어떤 영역에 대한 책은 없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런 질문을 더 많이 받고 싶고, 또 어느 서점이든 들러 그런 질문을 하기를. 우리 지역에도 풍성한 문화가 이미 있고, 대구 자립예술영역의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한 책 <대구자립예술생태지도:틈틈이>을 많이 추천한다. (서브컬쳐, 스트릿댄스, 힙합을 다룬 1권, 독립영화, 독립출판, 아트마켓을 다룬 2권, 인디음악, 새로운 국악을 다룬 3권, 거리예술, 다원예술, 대안미술을 다룬 4권으로 전 4권) 그리고 대구 출판사 한티재, 사월의눈, 마르시안스토리, 고스트북스의 책들과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출판작가들 근하, 이준식, 영향력, 타바코북스의 책. 사진·예술 작가님들의 책들, 남구도시탐사대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훌라에서 발간한 책 등. 언제든 원하면 지역을 다룬 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대구문화예술아카이브 구축 사업으로 각 영역의 지역문화의 아카이브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부분이 채워질테니, 그 기반 위에서 영향을 받은 이들이 또 새로운 지역 문화를 만들어 가기를 바라본다.

김인혜 │ 더폴락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