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1장
시선
미래를 만들어갈 세 가지 키워드:
지역, 예술, 그리고 청년
정연우 음악인·공연연출감독
미래를 만들어갈 세 가지 키워드: 지역, 예술, 그리고 청년_ 정연우 음악인·공연연출감독
글. 정연우 음악인·공연연출감독
# 나의 이름은 ‘로컬 뮤지션’입니다.
저는 조금은 늦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나고 자란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지역음악인’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제 가슴을 가장 뛰게 만드는 두 단어인 ‘음악’과 ‘지역’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해왔는데요, 그를 통해 얻게 된 확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래는 지역과 예술의 가치를 이해하는 새로운 세대와 세력들이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이라는 것인데요, 그 얘기를 여러분과 나눠볼까 합니다.
# 예측불가능한 세상의 변화, 그를 통해 예측할 수 있는 것
현대 사회, 특히 한국 사회는 예측이 힘들 정도로 빠른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인구감소라는 시대사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고, 출생률의 급격한 감소와 사망률의 가파른 하강으로 인해 유례없는 고령화와 미래동력에 대한 불확실성 또한 경험 중입니다. 산업현장에서는 로봇이나 AI들이 인간의 역할을 벌써부터 대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챗GPT같은 새로운 AI들이 언어를 넘어 그림, 음악 같은 예술의 영역까지 정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공상과학 같았던 ‘노동의 종말’ 또한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시대로의 전환은 TV 방송의 몰락을 가져오고 있고, 숏비디오의 등장은 시장경제의 광고, 마케팅 방향뿐 아니라 인류의 소통 방식까지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기존의 시스템, 거대기관, 거대매체, 거대담론들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를 대체하는 다양한 매체와 미디어, 가치관들이 빠른 속도로 생성 및 분화되어가면서 점점 더 세상은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요, 역설적이게도 이는 오히려 단 하나의 사실만은 더 확실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미래는 하나의 정답을 찾는 기존의 중앙집중화, 획일화의 방향이 아니라 수많은 정답들을 ‘함께 만들어가는’ 다양성, 다원주의, 자치와 분권의 시대로 나아가게 될 것이란 점입니다. 지역문화예술, 그리고 지역의 청년들이 잠재력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지금, 행복하십니까?” : 대답으로서의 문화예술
오랫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욕구는 ‘생존’이었습니다.
‘잘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경제성장을 거듭해야 하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이기고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 바로 ‘경쟁주의’ 이데올로기가 지금까지 사회를 지배해 왔습니다. 단언컨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있어 그 시스템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새로운 세대에게 있어서 만큼은요.
지금의 청년 세대는 생존경쟁의 끝에는 경쟁 그 자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몸으로 경험한 세대입니다. 경제성장의 환상은 끝을 향하고 있고, 연금제의 부담, 노동의 불확실성, 극심해진 기후위기와 환경문제 등 자신들의 지속가능한 삶 자체를 위협하는 사회적 문제에 계속 직면하고 있습니다. 기성 세대가 만들어 놓은 성찰없는 시스템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관념으로가 아니라 생활과 삶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우리는 그들과 함께, 또한 그들과 우리 모두를 위해서, 오랫동안 방기해 왔던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이러한 삶과 세상이 우리가 추구하고 도달하려 했던 결과가 맞는지, 그래서 과연 우리는 ‘지금, 행복한지’를 말입니다. 많은 이에게 대답은 ‘아니오’일 것이며, 그래서 우리에겐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세상은 기존의 생각과 언어, 시스템을 기반으로는 이해하고 정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흔한 말이지만 그 바탕은 ‘행복추구를 추구할 권리’를 찾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재력, 학력, 권력을 위해 오늘의 삶을 저당잡히는 삶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 삶의 가치를 배우고 실천하며, 진정 나를 위한 것이 무엇인가를 탐험해 나가는 것이 제가 믿는 새로운 삶, ‘행복’의 패러다임 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행복’이 가장 중요한 명제가 되어 갈수록, 예술은 더 크게 세상에 기능하게 될 것입니다. 예술이야말로 인간이 원하고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궁리 끝에 탄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을 어떠한 것이라 정의내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예술하는 AI의 등장은 그것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더이상 아닐지 몰라도 여전히 인간만이 즐길 수 있는 것,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표현 혹은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예술이라고 믿습니다.
# 다원주의적 세상에서의 ‘지역’의 가치
사회의 변화와 분화는 그 예술의 행태, 저의 언어로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과 형태 또한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매스미디어가 주도하는 대중문화예술의 힘은 강력하지만 이제는 거대미디어가 주도하는 방식이 아닌 소비자와 향유자가 스스로 문화예술을 이끌어가고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팬들이 주도하는 BTS의 팬덤 또한 대중문화 속에서 드러나는 그러한 예가 될 것이며 서브컬처, 소수문화, 특히나 각자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교류 형태가 그대로 반영된 ‘로컬문화’의 성장은 그러한 방향성, 즉 ‘고유의 것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음을 더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기생충’이 글로벌시장에 통한 것은 그것이 그들에게 ‘소통가능한 로컬문화’였기 때문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소통이 가능하지 않으면 인정 받을 수 없습니다. 전달 조차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유의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인정 받을 수 없습니다. 그저 위대한 것을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속에 소통하면서도 고유의 것을 놓치지 않고 있는 로컬, 소위 Glocal(Global+Local)한 것은 세상에서 점점 더 중요한 것으로 부각될 것입니다.
# 미래세대로서의 ‘청년’, 그들에게 ‘실험’을 허하라!
지역과 예술, 그리고 지역문화예술의 다원주의적 가치를 알고 실천해 낼 수 있는 동력은 아마도 기존의 세계관과 관습을 체화하고 있는 세대와 세력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 가치를 알고 더 키워나갈 수 있는 지혜를 가진 미래세대, 청년예술인들의 역할이 절대적인 것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태어난 청년들에게는 소위 ‘중앙’에 대한 향수가 없습니다. ‘저당 잡힐 미래’ 또한 이미 그들에겐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자신들의 삶을 꾸리고 보람과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삶의 양식을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이전의 세대들이 가졌던 수많은 시대적 경험들이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해 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실험’할 수 있는 권리를 그들에게 쥐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세대라고 해서 반드시 새로운 답을 알고 있는 존재인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의문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테지요. 다만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기존의 문법들을 알고, 그것에 더이상 목매지 않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
기존의 것들이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어떤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고 새 해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실험이 허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의 것들로 새로운 것들을 가늠하고 재단하고 가치평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거대한 결과를 위해 수많은 ‘일시적 실패’까지 용인하는 것, 자유로운 토론과 교류, 실험 속에서 피어나오는 절대적 가치들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세대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기성세대가 찾지 못한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기존의 잣대로 가능성을 재단하지 않고, 과정으로서의 실패를 용인해주며, 그들 고유의 방식으로 사유하고 교류하고 실천하고 실험하고 실패하며 그 속에서 대안을 찾아나갈 수 있는 그들만의 시공간이 필요합니다. 예술촌, 청년문화예술 플랫폼, 청년/예술인 커뮤니티, 미래예술인재단, 콘텐츠 제작소로서의 지역방송국 설립, 온라인지역문화예술사이트 제작 등 다양한 교류와 지원의 방법을 모색하고 그곳에 효과적으로 자원을 투여하고 배분할 수 있도록 미래세대의 목소리와 지혜를 구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정연우 음악인·공연연출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