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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은 사제들’ 속 월배성당

본당 내부

성모당

주인공 김 신부와 영신의 추억의 장소 월배성당

푸르른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카메라 앵글은 노랫소리를 따라 아래로 움직인다. 성가대 옷을 입은 영신(박소담)이 성당 마당에 서서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라는 성가를 부르고 있고, 김 신부(김윤석)가 영신의 바로 앞 벤치에 앉아 영신을 바라보며 노랫소리에 맞춰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이고 있다. 영신이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아니하고 생명의~”를 부르는 순간, 고음에 갈라지는 소리가 나오자 김 신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영신아”라고 말하며 벤치에서 일어나 영신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기도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찾아보자. 성가대는 포기하고”라고 하면서 영신을 본당으로 이끈다. 그러자 영신은 발을 구르며 “아~ 신부님, 저 정말 잘 한단 말이에요.” 하며 앙탈을 부리며 따라간다.2015년 개봉한 영화 ‘검은 사제들’ 속 월배성당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검은 사제들’은 뺑소니 교통사고 후 의문의 증상에 시달리는 여학생 영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구마예식(驅魔禮式, exorcism 엑소시즘)을 거행하는 신부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신은 교통사고 후 병실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해 차 지붕 위에 떨어진 후 뇌사상태가 돼 있다. 김 신부는 구마예식을 통해 영신으로부터 악마를 떼어내 영신을 구하고자 한다. 구마예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장소나 사물 또는 사람을 악마에 의한 고통과 파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리스도교,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의 구마의식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교회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되고 마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적인 권위를 가지고 청하는 것을 ‘구마’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이를 행하셨으며, 교회는 마귀를 쫓아내는 권능과 의무를 예수님께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개봉 당시 한국 영화로는 처음 다루는 소재로 주목을 받았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구마예식을 거행하는 신부로 김윤석, 그를 돕는 부제는 강동원이 맡았고, 조연급인 부마자 여학생 영신은 박소담이 연기했다.
월배성당은 영화에서 김 신부(김윤석)가 과거 부임해있던 성당으로 영신(박소담)과의 추억이 어린 장소다. 영화에서 월배성당이 등장하는 신은 뺑소니 사고 후 김 신부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나온다. 2015년 여름 영화 촬영 당시 하루 동안 성가대 테스트 장면 외에도 두 장면을 더 찍었지만, 편집과정에서 두 장면은 삭제되고 영신이 김 신부 앞에서 노래하는 장면만 영화에 삽입됐다.

1958년 건립, 초대 박재수 주임 신부 사재 출연해 건립

월배성당은 1958년 당시 화원본당 주임신부였던 故 박재수 신부가 사재를 출연해 약 3,500평 부지를 매입해 건립했다. 당시 매입할 부지 내 돌담 옆에 붙은 움막에는 거지들이 살고 있었고,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워 집을 한 채 장만해줬다는 후문이다. 이듬해 강당과 사택을 증축해 완공됐다. 현재 성당의 본당과 성모당(聖母堂)은 1958년 건립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 본당은 로마네스크양식의 붉은 벽돌로 지었다. 또 현재 성당입구에 있는 김대건 신부 동상은 1978년 사목회 김춘병 회장이 기증해 건립한 것으로 처음에는 성물방 옆에 위치해 있었으나, 2006년 이곳으로 옮겼다. 동상 건립 당시 서울의 서강대학교를 찾아가 김대건 신부의 모습 등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본당의 창은 같은 고딕양식의 명동성당이나 계산성당의 창들이 아래와 좌우가 직선이고 윗부분이 타원형의 아치형으로 된 것과 달리 월배성당의 창들은 모두 직사각형으로 된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 짓는 성당에는 종탑이 드물지만 과거 시계가 흔치 않았던 시절 성당의 종소리는 시간을 알리는 신호였다. 월배성당의 종탑에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등 네 명의 복음사가상이 세워져 있다.
성모당은 성당 입구에서 본당을 지나 수도원을 향하는 성당 마당 한중간에 있으며 19세기 중엽 성모가 발현했다는 프랑스 루르드 지역의 마사비엘동굴을 본떠 만든 것이다. 성모당 상단 가운데에는 ‘평화의 오후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글귀 양옆으로는 성모당 착공일 1958년 3월 11일과 완공일 1958년 4월 20일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는 신자들이 기도를 하거나 미사(Missa;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를 보기도 한다. 영화 촬영 당시 성모당 앞에서도 촬영을 했지만 개봉된 영화에는 삽입되지 않았다.
월배성당의 전신은 화원성당의 조암공소였다. 당시 화원본당의 주임 신부였던 박재수 신부는 월배지역에 섬유공장들이 들어서고 인구가 모여들자 본당 건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1955년 성당 건립을 건의했다. 1957년 본당 건립 승인이 났고, 그 해 9월과 10월 부지를 확보했다. 1958년 월배성당이 건립되면서 화원본당에서 분가했으며, 또 월배성당으로부터 송현성당(1982), 상인성당(1991), 월성성당(1992), 대곡성당(1996) 등으로 분가했다. 현재 월배성당의 신자는 약 4천여 명이다.
성당에는 너른 마당이 있고, 마당에는 성당을 지을 때 심었다는 아름드리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성당과 함께 나이를 먹고 있다.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면 이웃 주민들에게 넉넉한 쉼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월배성당

1995년 12월 월배성당은 대구대교구 관할에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본당으로 편입됐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1209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설립한 수도회이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1958년 처음 한국에 진출했으며 부산에서 사목(司牧)을 시작했다. 현재 서울 한남동 관구본부를 비롯해 부산과 대구, 인천 등지에서 사목하고 있다. 꼰벤뚜알은 공동, 집합이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모여 사는 공동체를 뜻한다.

대구에서는 1959년 범어성당에서 사목을 해왔으며 1996년 범어성당을 대구대교구에 다시 돌려주고 월배성당으로 이전해 왔다. 당시 대구대교구는 수년 후 있을 대구교구 설립 100주년(2011년)을 맞아 기념 성당을 건립할 계획이었다. 기념 성당 건립지로는 수도원이 있던 범어동이 최적지로 선정됐고, 수도원의 부지를 교구에 내어주는 대신 몇 군데 이전할 곳을 제시받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월배성당이었다.
월배성당으로 오자 성당 곳곳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이 묻어있었다. 초대 주임신부 박재수 신부는 보통의 교구 신부들과 달리,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에 관심이 높아 교구 사제로서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가입했다. 재속 프란치스코회는 수도자는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래서 성당 마당에는 성 프란치스코상을 세웠었다. 훗날 옮기는 과정에서 손상을 입었고, 현재 성당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상은 수도회가 온 뒤 새로 세운 것이다. 박 신부는 생전에 “이곳에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이 펼쳐지리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쩌면 박 신부는 이미 40년 전에 수도회가 월배성당으로 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수도회가 월배성당으로 온 후 수도원과 교육관 등을 새로 건립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변했다. 현재 성당의 건물로는 본당과 교육관, 수도원, 수도회가 운영하는 교육관(인프란치스카눔) 등 4개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수녀원과 사무실은 본당이 운영하는 교육관 내에 속해 있다. 한편 범어동 수도원이 있던 곳은 지금 대구대교구 100주년 기념 성당이 들어서 있다.

영화 ‘검은 사제들’ 속 월배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