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1장
탐색
인공지능 시대의 문화예술
챗GPT
우리는 이미 영화적 체험을 통해 먼 미래의 삶을 조금이나마 겪어보았다. 로봇에게 지배당하거나 로봇이 주인이 되는 세상. 대부분의 SF 소재의 텍스트는 이런 양상이다.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라면 머지 않은 이야기다. 우리는 이성과 반대되는 감성의 영역이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오래도록 단정 지어 왔다. 그런 생각이 무색하도록 로봇의 예술 활동에 대한 행보가 나날이 쏟아진다. 생계의 위협을 느끼는 이도 있는가 하면 인공지능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이들도 있다.
인공지능의 새로운 돌풍
예술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로봇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챗GPT가 세상에 공개됐다. 공개 두 달 만에 이용자 수가 무려 1억 명을 돌파했다. 인공지능의 눈부신 도약이었다. SF소설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분하는 기준이 인간 고유의 감성에 있다고 보았다. 인간과 달리 인공지능은 감정이 결여된 존재이며, 감성이 요구되는 예술적 창조 활동은 불가능하리라 판단했다. 현존하는 SF 텍스트의 상당수가 이 지침을 따르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전 단계에서 이미 지각 능력, 학습 능력, 추론 능력을 갖춘 상태였다. 그러나 오픈AI에서 새로 공개한 언어모델 챗GPT1는 학습을 통한딥러닝2 단계에 도달했다. 인간의 자연 언어3를 데이터베이스로 처리하여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문까지 가능해졌다.
챗GPT가 비평을 쓴 사례가 하나 있다. 한 이용자는 챗GPT에게 특정 영화의 비평을 지시했다. 첫 작업물은 내용적인 면에서 완성도가 떨어졌다. 대략적인 줄거리 요약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이용자는 다시 계급론적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지시했다. 그러자 계급 구조에서 드러나는 표현의 한계를 정확히 짚어냈다. 프롬프트가 명확해질수록 챗GPT의 답변 또한 정교해진다는 사실을 입증해낸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논문, 시나리오, 에세이 등 다방면으로 작문을 수행했다. 반복적인 문서 처리 작업을 필요로 하는 행정서비스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지 기대하는 전망도 생겨났다.
기술 혁명이 가져온 발전은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겠지만 이러한 현상에 피해를 본 이들도 있다.
1 – 인공지능의 한 갈래. 특정 단어를 주고 그다음에 출현할 확률이 가장 높은 단어를 예측하여 제시하는 모델
2 – 인간의 두뇌 작동 방식을 흉내 낸 것
3 – 인간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길을 잃은 예술가
예술이 인간의 영역이라는 주장은 오랫동안 뿌리내려 온 통념이다. 그러나 챗GPT를 포함한 인공지능이 예술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최근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AI화가의 등장 이후부터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웹소설 표지 작업이나 삽화 외주를 통해 일거리를 얻는다.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정도 작업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고작 10초 만에 그림을 생성했다. 인간의 작업 시간을 생각하면 획기적인 단축이다.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디테일이 빈약하고 상호 피드백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도 이런 불편함마저 감수할 만큼 낮은 금액은 소비자를 이끌었다. 개인의 역량이 시장성으로 연결되는 예술계에는 불안한 조짐으로 다가왔다.
챗GPT의 기술적인 성과는 뛰어나다.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으면서 인력 또한 줄일 수 있다. 질보다 양적인 가치로만 판단한다면 가장 성실한 일꾼이 될 터다. 그러나 발전 뒤에는 이면 역시 존재한다. 창작의 토대에는 사회·문화적인 맥락이 녹아든다. 사회에 직접 발을 담근 인간이 전승해 온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챗GPT의 학습 데이터에는 유해 정보에 대한 방지턱이 부족하다. 계급, 젠더, 소수자, 전쟁, 질병 등에 대한 맥락을 완벽하게 읽어내기란 역부족이다. 이런 우려의 목소리와 상반되게도 챗GPT가 화제가 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발 빠르게 GPT-3에 대한 라이선스를 사들였다. 다른 기업들도 앞다퉈 언어모델 연구와 개발에 뛰어들었다. 발전의 가속화는 예정된 수순이다. 그러나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한 규제와 제도 마련에 대한 논의는 동떨어져 있다. 인공지능을 우리 삶에 들이는 일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예술은 시대 흐름에 따라 꾸준히 변화해 왔으나 갑작스레 큰 폭으로 벌어지는 흐름은 준비되지 않은 인간을 두고 간다. 혼란한 틈을 타 새로운 전환이 찾아올지 인간 역사의 멈춤을 불러올지 예술계의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