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1장
칼럼
청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역의 청년
문화·예술 정책에서 필요한 것들
청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역의 청년 문화·예술 정책에서 필요한 것들
글. 신민준 문화연대 집행위원
지역에서 청년 문화·예술이라는 화두가 떠오르는 이유
2010년대 후반 이후, 지역에서 청년 문화·예술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법제처에서 운영하는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 중 총 21개 지자체에서 별도의 청년 문화예술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광역 8개, 기초 13개) 그렇다면 지역에서 청년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방자치제라는 제도를 고려할 때 지역마다 다른 조례 제정의 이유를 특정한 하나의 이유로 일별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정책 경향의 관점으로 본다면 지역의 청년 문화·예술 조례들은 통상적으로 ‘지역 분권’ 혹은 ‘지역 소멸’에 대한 고민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부산광역시는 지자체 중 최초로 2013년에 「부산광역시 청년문화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다.1
지역의 청년 문화·예술 정책을 지원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라운드테이블에서 당시 해당 조례의 입법을 담당했던 정책가는 이 조례를 제정한 배경으로 부산 청년들의지역 이탈을 제1의 이유로 꼽았다. 한국의 제2의 도시라는 부산에서조차 서울로의 이탈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청년문화를 활성화하여 지역의 활력을 도모하고 청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여 이탈 현상을 막고자 했던 취지가 무엇보다도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2 부산 외의 지역에서도 청년들의 지역 이탈 문제는 지방소멸을 가속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청년 관련 실태조사에서 지역 내의 경제, 주거, 복지, 문화 등의 인프라 부족은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로 꼽힌다.
이러한 배경에서 예술과 문화시설을 비롯한 협의의 의미부터 삶의 양식과 질을 뜻하는 광의의 의미까지 ‘문화’의 지역 간 격차는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원인이 된다.
1 – 이 조례는 2017년 「부산광역시 청년 기본 조례」가 제정되며 통합 폐지되었으나 서울특별시에서 「서울특별시 청년 예술인 육성 및 지원 조례」가 제정된 2021년보다 8년이나 빠르게 제정되었다.
2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예술 TF 백서」, 2022 중 Ⅲ 미래예술을 위한 제언- 4. 라운드테이블 발췌
‘청년’에 투사되는 정책의 욕망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지역별로 청년 문화·예술 관련 조례의 내용은 다를지라도 이를 근거로 만들어지는 사업들은 공통적인 경향성을 가지곤 한다. 그것은 각 사업에 서로 이질적인 이중적 시선이 투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각 사업에서 한편으로 청년은 자원, 능력을 가지지 못하며 불평등을 겪고 있는 사회적 약자로서 상정된다. 이 때문에 이들에게는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청년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새로운 세대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롭게 사회와 경제를 견인할 주자로 주목받는다. 청년 정책에는 이러한 이중적 시선이 투사된 경우가 많다. 문제는 서로 이질적인 속성(약자성, 주체성)이 개별 청년사업의 구체적인 목표나 방향 설정에 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여기다 문화·예술 사업의 주된 유형인 ‘보조금 사업’이라는 성격과 기존 문화·예술 정책의 기준점인 ‘수월성’까지 더해지고 지역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까지 더해지면 더더욱 많은 혼란이 생긴다. 위기의 청년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은 직접적이고 세밀한 지원일 때가 많지만, 실제 정책과 사업에서는 적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들이 요구되어 청년 정책의 목적이 주객전도 되는 일이 벌어진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500만 원~1,000만 원의 보조금 사업이지만 이것을 통해서 일자리도 만들고 청년 활동 플랫폼도 만들고, 예술의 사회적 가치도 확산해 보고, 지역 소멸을 구원할 아이디어까지 바라는 식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제대로 된 인건비도 책정하기 어려운 현재 형태의 문화예술 사업에서는 일자리는 생길 수 없고 자그마한 사업비로는 사라져 가는 지역을 구원할 만한 혁신적인 활동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청년이 활동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기반이고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임금이다.
2019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왔을 때, 기회를 쌓기 위해서 참 많은 지원서를 썼다. 일주일에 두 개꼴로 지원서를 냈지만 경험이 없는 내가 선정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고 그나마 선정된 사업들에서는 내 인건비를 책정할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생존을 위해서 벽화나 디자인 등을 수주 받는 대로 진행했다. 이런 삶의 패턴 때문에 나중에는 번아웃이 왔지만 지원사업에 선정되었기 때문에 꾹꾹 참으며 지역사회에 예술로 기여하는 그 사업을 꼭 수행해야 했다. 그 해의 끝에서는 이런 삶이 지속 가능한 삶일까? 회의감이 들었다. 이러한 경험을 나 혼자만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사자가 참여하는 지역의 청년 문화·예술 플랫폼 – 거버넌스의 필요성
이러한 경험 때문에 청년 문화·예술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타자와 정책의 욕망을 걷어내고 청년 당사자의 참여와 결정을 통해 청년 당사자가 생각하는 청년에게 필요한 정책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며 이런 활동이 가능하도록 참여에 기반한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청년은 각자가 원하는 것을 말할 능력이 있다. 필요를 구체적인 방향으로 제시하는 일, 즉, 정책을 설계하고 제안하는 일은 어느 정도 숙달이 필요한 일이기에 시작하는 시기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숙달되어 갈 것이다. 2010년대 참여형 청년정책의 흐름이 형성되고 2020년대 「청년기본법」이 제정되며 전국에서는 청년참여 정책기구가 일반화된 이후로는 청년들이 직접 정책을 토론하고 제안하는 일은 이미 익숙해진 흐름이 되었다. 그리고 각종 지역문화재단에 전문가로 컨설팅을 수행하는 세대들도 경험을 거쳐서 성장해오지 않았는가.
또 청년 참여에 기반을 둔 제도와 문화의 형성은 지역일수록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지역의 문화·예술 생태계는 주로 학교를 중심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에 종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생태계의 특성이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는 중앙 정부에서 청년 예술인들의 일자리를 위해 만든 사업이 지역으로 내려올수록 금액은 줄어들고 교수, 선생님들에 의해 하나의 권력으로 활용된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이러한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청년들은 미래적 지향을 가지고 지역의 생태계를 견인할 주체적인 이들보다 타자와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기존의 일들을 크게 문제되지 않는 선에서 답습해나갈 이들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 아닐까 싶다. 지역이라는 현장에서 ‘관계성’은 지역문화·예술 생태계가 수월성에 기초한 엘리트 생태계와 구별되는 중요하고 고유한 가치이긴 하지만 부정적으로 발현될 경우 생태계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문제점이 된다.
이 때문에 청년 당사자의 관점으로 새롭게 정책과 사업을설계할 수 있도록 청년이 참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3에 기초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며, 요식적 행위로귀결되지 않도록 사업과 예산의 결정권을 구체적으로부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참여를 통해지역의 생태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며 지역의전문가를 사회적인 경로를 통해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쉽게 말하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설계하는 일을 통해개인은 성장하게 되며 사회적으로는 새로운 전문가의탄생과 등장을 기대할 수 있다.
3 – 일방적인 정부주도적 정책수립을 벗어나 정부 외에도 기업, 비정부기구, 전문가, 당사자 등이 공동의 관심사에 기초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정책을 수립해가는 행정운영방법론
지역의 청년 문화·예술 기반 마련을 위한 지역문화재단의 역할
청년들이 지역에서 지속해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역 문화·예술생태계 자원의 점유자이자 중요한 행위자 중 하나로 지역문화재단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역문화재단은 구체적으로 지역문화 생태계 활성화를 목표로 ‘협력적 거버넌스’를 지향하여야 한다. 협력적 거버넌스란 정책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증대하기 위해 운영되는 신공공관리론의 거버넌스와 달리 민주적인 과정과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말하자면, 신공공관리론에 기초한 문화재단은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를 초청하여 자문을 받는다. 구체적인 정책 결정 권한은 문화재단이 행사하지만 협력적 거버넌스는 지역의 청년, 전문가, 시민 등을 행위자로 초청하여 정책을 함께 수립하고 결정하며 집행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문화재단은 과거와 달리 문화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집행하는 조직이 아니라, 문화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중간지원조직으로서 기능하며 행위자와 지역사회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협력적 거버넌스 원리에 기초하여 지역의 문화재단이 청년 문화·예술 활성화를 고민해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제안해보면 다음과 같다.
▲ 무엇보다도 정책설계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경제적인 보장이다. 청년은 단일한 대상이 아니며 소득, 성별, 지역 등의 다양한 개개인의 격차를 가지고 있다.
청년 개개인이 가진 고유한 역량이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경제적인 것들에 좌우되어 좌절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안정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밥을 굶으면서 예술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를 놓치면서 청년 문화·예술 정책을 설계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빠트리는 일이다.
▲ 지역에 청년 예술인을 어떻게 유입시킬 것이며 어떻게 지속적으로 활동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기초예술의 경우 장르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교육과정에서 지역을 하나의 ‘씬’으로 경험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심지어는 고정관념에 의해 부정적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청년들이 지역이 하나의 예술 활동을 위한 씬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경험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지역의 예술대학과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다.
▲ ‘지역성’을 중심으로 ‘수월성’의 예술계와는 다른 다변화된 예술현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국내 문화예술계는 주로 수월성에 기초하여 형성되어 왔다.
수월성 중심의 예술계를 중심으로 사유할 경우 수도권 중심의 사유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수월성에 기초한 예술계와 달리 지역의 문화현장이 줄 수 있는 고유의 매력과 의미는 무엇일지를 고민하며 중앙정부의 정책들과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 일상의 삶 경험에서 창작을 찾는 과정형 창작 사업은 이러한 유형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 지역문화 정책은 ‘관계성’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통상적인 문화·예술 정책은 예술 경영의 이론에 따라 창작과 향유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지역문화 정책은 중앙이나 광역의 정책처럼 창작과 향유로 이분되어 구성되기 어렵다. 이는 생활예술을 둘러싼 갈등처럼 일종의 혼란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지역에서 사람과 부대끼는 경험, 상호가 영향을 주며 발생하는 영감들, 친밀한 관계들은 지역의 문화·예술 현장이 줄 수 있는 고유한 매력이 되어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청년예술인은 지역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자 주체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역의 문화재단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창작 지원 외에도 지역 문화·예술 커뮤니티 형성을 위한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 각각의 요소가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한다는 ‘생태계’적 관점을 바탕으로 타 지역정책, 청년정책과 문화·예술 정책의 상호연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중앙에서 광역-기초 단위로 내려올수록 이름만 다른 비슷한 유형의 많은 사업이 존재한다. 거의 동일한 사업을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에서 또 기초자치단체의 관청, 문화재단에서 그리고 청년기관에서 중복적으로 수행한다. 하지만 수행하는 기관에 따라 어떤 사업은 문화·예술로 기록되고 어떤 것들은 기록되지 않는다.
지역문화 생태계 활성화의 역할을 수행하는 문화재단은 넓은 관점을 가지고 흩뿌려져 있는 활동들을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로 엮어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으며, 타 기관에서 운용되는 사업과 자원을 활용하여 영리하게생태계로 수렴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역의 문화·예술 생태계가 활성화되어 전국마다 고유한 매력이 있는 활동과 씬이 더 등장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것이 서울 중심의 생태계에 대한 대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필자도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서울 출신의 사람은 아니며 서울살이가 버거워질 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보곤 한다. 내가 자란 남도의 바다의 풍광은 언제나 그리우니까.
청년에게 기회와 권한이 주어지고 이들이 주체적으로 지역의 씬을 재창조해낼 때 언젠가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신민준 문화연대 집행위원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예술TF 공동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