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1장
옛;날
‘관람(觀覽)’이 전부이던 그 시절의
문화공간
네덜란드의 건축가 알도 반 아이크(Aldo van Eyck, 1918 ~1999)는 공간을 사람을 모이게 하는 그릇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문화공간은 문화를 매개로 사람을 모이게 하는 곳이다. 지금까지 문화공간은 일반적으로 연극이나 영화, 공연 등을 관람(觀覽)하는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예술, 문화콘텐츠라는 특정 영역이 일정한 공간에서 행해지고, 관객들이 그것을 수용하는 형태다.
전통적으로 문화공간은 문화시설 내 공간을 의미한다. 문화공간은 문화 생산자의 문화적 활동의 장이자 결과물이고, 이를 수용하기 위해 문화 수용자는 문화공간을 찾는다. 문화생산자란 작가, 감독과 같이 실제 문화 산물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를 의미하는데, 문화공간은 이러한 문화 산물을 특정 공간에서 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문화 수용자는 문화공간에서 연극, 영화, 콘서트 등을 경험하는 대중을 의미한다. 문화공간은 다양한 장르의 문화 산물과 문화 수용자들을 만나게 하는 매개체로 문화 생산자와 문화 수용자를 연결한다.
건축가 승효상(2012)은 “건축은 ‘공간의 조직’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공간의 조직이란 우리가 ‘사는 방법’을 의미한다. 집의 거실과 주방, 침실 등을 얼마만큼 크게 하고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사는 방법이 달라지는 것처럼 문화공간을 설계하는 것은 그 시대의 문화를 즐기는 삶을 조직하는 일이다. 그리고 유사한 구조의 시설이 늘어난다는 것은 공통된 욕망과 사회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화공간은 그 시대 문화를 즐기는 이들의 삶에 관한 표현이다.
전통적인 문화공간에서 관객은 예술을 관람하고 예술가의 퍼포먼스를 일방적으로 수용한다. 미술작품이나 문화재를 감상할 때면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지켜본다. 작품을 만질 수도 없으며 감상을 나누기도 어렵다. ‘볼 관(觀)과 볼 람(覽)’이라는 한자어의 의미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며 한 방향으로 흐른다. 예술은 언제나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한 방향이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나름대로 해석하거나 받아들였다. 이는 사회가 예술에게 부여한 ‘권위’였다. 과거 예술이 신성시되었던 시절부터 부여된 권위에 예술의 숭고함을 이야기하며 교양이라는 프레임으로 예술을 포장하는 예술 신비주의와 예술 숭배주의가 힘을 더했다. 때문에 그 문화공간을 찾는 문화 소비자는 그곳에서 예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하고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문화공간이 변하기 시작했다. 한 방향의 문화소비가 양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문화공간을 찾는 이들이 늘었고, ‘관람’만으로 만족하던 문화소비자의 요구도 진화하기 시작했다. 문화소비의 변화는 시대적 변화의 흐름과 함께하는데 대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문화정책의 변화다. 국내 문화정책의 흐름을 살펴보면 문화에 대한 관심이 예술의 영역에서 복지와 산업 일상과 환경으로 확장되었다. 문화환경 정책도 이러한 흐름을 보인다. 1970년대에는 전통 중심의 예술에 집중했고, 1980년대에는 문화민주주의에 주목하여 문화권과 문화복지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었다. 1990년대에는 문화가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문화사업과 창의 산업에 집중 지원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일상생활 속의 문화에 주목하였고 일상, 생활, 환경, 교육 등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문화 소비자의 생활방식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했다. 사람들은 경제적 효율보다 쾌적함과 여유를 추구하게 되고, 놀이와 감성을 중요시하기 시작했다. 가치관의 변화는 새로운 문화소비 형태를 만들어 냈다. 소비자들은 체험과 감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성과 체험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소비자의 변화에 사회자본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화공간에서 창작과 정보 지식을 공유하고 새로운 문화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되었고, 문화공간은 조금씩 복합화되기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2021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9년까지 국민의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은 65.8%에서 81.8%까지 상승했다. 2019년 문화예술행사 참여 경험과 참여 의향 역시 2010년 대비 6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이제는 대부분의 문화공간이 복합문화공간이다. 관람이 중심이 되는 분야에서조차 관객의 호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관람객과 소통하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적용하기 시작했다. 권위의 상징이었던 문화는 취향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문화공간 역시 차려입고 나서야 하는 문턱 높은 곳이 아니라 언제나 편하게 찾아가 즐기는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 문화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해진 만큼 우리의 일상은 조금 더 풍요로워진 셈이다.
참고문헌
승효상.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컬처그라퍼. 2012.
신현암 외 삼성경제연구소. 「IMF사태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