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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기획특집
제4차 생각나눔포럼
오징어게임은 우리의 어릴 적 골목이나 배꼽마당 놀이도 세계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다른 나라, 다른 지역이 보유하지 못한 독특한 문화는 그 자체로 이미 차별성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콘텐츠화 하느냐다. 달서문화재단은 지난 11월 11일 달서아트센터 와룡홀에서 우리 지역이 가진 유 · 무형의 자산을 콘텐츠로 개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지역 스토리 콘텐츠의 개발과 확장’이라는 주제로 전문가들을 초청해 제4차 생각나눔포럼을 진행했다.
지역 스토리 콘텐츠의
개발과 확장
선욱현
사단법인 한국극작가협회 이사장
왜 지역 콘텐츠인가
지역이 가진 특색이야말로 지역이 가진 최고의 자산이다. 지역이 가진 역사, 지형, 사건, 특산물, 유물 등은 타 지역이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지역의 자산이다. 지역 콘텐츠를 개발한다는 것은 지역이 가진 문화의 차이를 드러내고 장점을 부각해서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지역 경쟁력은 지역이 가진 문화적 콘텐츠의 규모와 파급력에 달려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지역 콘텐츠의 개발은 획일화에 대한 거부이며, 각 지역마다 독특한 지역 문화가 활성화될 경우 국가 전체 문화의 격이 올라가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가까운 일본에는 다양한 종류의 청주가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 또한 각 가정에서 막걸리를 담가 먹었고, 집집마다 막걸리 맛이 달랐다고 한다. 사적 제조가 금지된 후 막걸리는 획일화되고 독특한 맛도 몇몇 종류로 급감하였을 것이다. 최근에 다시 규제가 풀리며 살아나고 있으니 우리나라 막걸리도 분명 명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지역 콘텐츠는 멀리서 찾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 오래 함께하고 있는 보물과도 같다.
지역 콘텐츠 개발의 어려움
지역 콘텐츠를 개발하고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예산과 지원 주체, 지역 콘텐츠 연구자, 작가, 텍스트 또는 아이디어를 극화 또는 상품화할 수 있는 실행 주체 등 4가지가 필요하다. 지원 주체는 대부분 지자체가 해당된다. 그런데 지자체의 지원 방식은 대부분 1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 그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다음에 중단될 수 있다. 하지만 지역 콘텐츠 개발은 시간을 두고 실행과 검증, 재실행을 반복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인 만큼 행정이 의지를 갖고 밀어붙여야 하는 미션이라고 할 수 있다.
향토 연구자는 현재도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지원 주체는 그 연구자들을 작가와 연결시켜야 한다. 연구자와 작가는 영역이 다르며 작가가 해야 될 일이 있고, 연구자가 1인 2역으로 창작까지 할 수도 없다. 또한 작가가 향토를 공부한들 연구자의 오랜 연구 실적을 따라잡을 수도 없다. 지역 콘텐츠 작업의 연구자와 작가 간의 긴밀한 교류와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실례로 통영과 부산, 대전, 안산문화재단 등에서는 꾸준히 지역 콘텐츠 희곡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작가가 평상시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소재를 공모를 위해 공부하고 극화한다는 것은 짧은 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만약에 모험처럼 그렇게 공부해서 탈고를 했는데 당선되지 못하면 그 작품은 사장되기 쉽다. 그래서 강원도립극단은 완성된 희곡이 아니라 시놉시스 공모를 통해 지역 콘텐츠 공연을 만들기도 했다. 그만큼 그 지역의 작가를 보유하고 있지 않는 한 지역색을 잘 살린 작품을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실행 주체는 지역문화재단이 되기도 하고 지역 공립 극단이 되기도 한다. 지원 주체가 실행 주체까지 되기는 쉽지 않다. 행정과 콘텐츠 개발 과업은 다른 영역이다. 지원 주체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아야 하고, 실행 주체는 지원 주체의 목적을 잘 알고 그에 맞추어 지역 콘텐츠 개발 계획과 예산 계획도 현실적으로 세워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실행 주체는 멀리 보고 지속적인 창조와 검증, 재창조를 이어가야 한다.
전북과 강원도의 사례
국내 지역 콘텐츠 개발 사례들을 살펴보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지속적이어야 성과물을 낼 수 있는 작업임을 알 수 있다. 전북문화관광재단은 2013년 말 전북관광브랜드공연이란 이름을 걸고 뮤지컬 ‘춘향’을 발표했다. 그리고 해마다 수정을 거쳐 레파토리화를 위해 노력했다. 지역 예술인과 재단 사이에 우여곡절도 있었다. 춘향에 이어 ‘홍도1589’를 창작해 몇 년을 이어갔고 2021년에는 ‘몽현 서동의 꽃’이라는 판소리 댄스컬 장르를 걸고 상설 공연을 진행하는 등 국내에서는 비교적 꾸준히 노력 중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정선아리랑문화재단 또한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브랜드 공연 신개념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아라리’를 창작 발표하여 오일장이 열리는 때마다 상설 공연을 진행하고 있고, 춘천 및 타 지역 순회 과정을 거쳐 지난 5월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수도권 관객에 선보이기도 했다. 그 공연은 초연 이후 크게 세 번 정도의 변신 과정을 겪었다. 지역 콘텐츠를 발굴해 창조하고 알리고 정착하기까지 지난한 노력이 필요함을 두 재단의 사례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초연에 명작 없다… 기다리며 완성도 높이는 과정 필요
이상의 예에서도 보았듯이 지역 콘텐츠의 발굴과 제작, 레퍼토리의 정착은 결코 쉬운 미션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요원한 과제에 대한 필요성 인식과 과학적인 개발 과정이라고 본다. 또 검증과 지속적인 투자 계획도 필수다. 가요와 드라마, 영화 등 한류 콘텐츠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지금, 한국의 문화는 곧 지역의 문화며 어쩌면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지원 주체와 개발 주체가 하나가 돼 믿음과 소명을 가지고 과제를 꾸준히 수행하는 것만이 희망일 것이다. 초연에 명작 없다. 각계의 의견을 들어보고 다시 업그레이드해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결국은 창작자든 지원자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추진할 수 있는 애정과 희망이 없다면 지역 콘텐츠 개발이라는 것은 요원하다. 셰익스피어나 체호프 같은 세계의 유명 작품들은 오랜 기간을 거쳐서 완성된 작품들이다. 때문에 지역 콘텐츠의 개발은 지자체와 극단 등 실행 주체들의 의지가 꼭 수반되어야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
지역 콘텐츠 스토리의 성과와 가능성
대구 공연예술 사례를 중심으로
2003년 이후 소재와 원작의 다변화
지역 콘텐츠 스토리는 과거 역사적인 사실이나 인물에서 생활의 풍경과 소시민, 골목 등으로 소재가 다양해졌고, 작품 면에서도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탈피해 대구 출신의 작가들 작품이 많아졌다는 특징이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2003년 이전과 이후 스토리 콘텐츠가 달라졌다. 2003년 이전에는 대구를 대표하는 2·28민주의거 등 어떤 역사적인 사실과 인물들을 소환해서 공연되는 사례들이 좀 있었다. 하나의 공연적인 성격보다는 축제나 교육적인 측면에서 역사를 기반으로 한 나열 정도였다면, 2003년 대구시립극단의 이상헌 감독 체제가 되면서 확 바뀌기 시작했다. 역사 이야기에서 근대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2003년도에 공연했던 ‘동화세탁소(안희철 작)’는 도원동 자갈마당 옆 세탁소를 사랑하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특별한 역사적인 얘기가 아니라 지역의 소시민들이 살아가는 애환과 정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갈등들을 생활 풍경으로 붙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동화세탁소’를 기점으로 지역 스토리의 소재가 ‘역사 속에서 대구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게 됐다는 것이 가장 큰 포인트다.
대구문화재단 설립과 대명공연거리 조성 후광효과 톡톡
2008년부터 2015년까지는 지역 소재 콘텐츠들이 대폭 증가했다. 지역 작가의 스토리텔링들을 기반으로 지역에서 활동하는 연출자 중심의 하드웨어가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대구문화재단 설립과 함께 지원체계가 구축된 것이 크게 작용했다. 대명공연거리가 형성되고, 소극장 특구를 통한 소극장 중심의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생계형 작가들이 늘어났고, 극단도 활성화됐다. 극단도 기존에 갖고 있던 번역극 중심을 벗어나서 다양한 지역 소재를 바탕으로 한 창작극을 무대에 올렸다. 북성로나 서문시장을 소재로 한 이야기 등 작품들이 쏟아졌고, 이 작품들 안에는 지역이라는 배경 외에도 이미 생활 속으로 들어온 그러한 환경들이 조성됐다. 그것이 다시 뮤지컬로 넘어가면서 지역 소재가 안정화되고 창작의 붐이 일었다. 대구 지역 소재가 활발했던 때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안희철 작가, 최수환 감독, 김하나 작가 등이다. 이들은 지역 소재를 기반으로 작가적 상상과 미학적인 연출로 발전된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특히 소극장 특구인 대명공연거리 조성은 지역 콘텐츠 개발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지원을 통해 작가들이 작품 쓰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배우와 연출자 등이 직접 글을 썼고 소재는 그만큼 다양해졌다. 지자체의 지원과 대구문화재단의 지역 특성화 콘텐츠 육성사업,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역 소재를 유도했고, 뮤지컬, 연극, 오페라 등 탈 장르화가 이어지고 있다.
강용준
제주문학관 관장
제주 문화 콘텐츠 개발의 조건
제주 문화를 알아야 제주적인 소재 쓸 수 있어
글로컬리즘은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세우기 위한 대안이었다. 여기에서 ‘가장 향토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향토적이라는 의미는 다양성 속에 빛나는 독특한 개성이다. 그 지역만이 갖는 문화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새롭고 신비롭고 독특하기 때문에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이것을 함부로 콘텐츠화했을 때는 상당히 변질되고 왜곡된 작품들을 생산하게 된다. 그 지역을 모르면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고,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쓰기 힘들다. 설령 쓴다고 해도 왜곡이 되거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실례로 뮤지컬 ‘백록담’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극작가가 쓴 작품이다. 원래 설문대할망신화를 모티브로 해서 의뢰를 했는데 작가가 설문대할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자료를 수집해 보니까 조각난 몇 개의 에피소드뿐이었다. 그래서 작가가 못 쓰겠으니까 소재를 바꿔달라고 요청했고, 홍연애와 조종철의 사랑 이야기로 바꿨는데 그 내용은 제주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사례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CEO라고 불리는 여성 거상 김만덕을 소재로 한 뮤지컬 ‘만덕’을 들 수 있다. 내용 중 만덕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자신은 ‘귤차를 팔면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런데 당시 귤은 제주에서 진상품이었고, 임금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귤을 키우는 사람들은 개수가 부족하면 곤장을 맞았다. 그렇게 관리가 엄격한 귀한 귤을 무슨 수로 가져가 차로 판매하겠다는 말인가. 당시의 실정을 모르는 데서 오는 왜곡인 경우다. 이외에도 역사적 사실이나 제주의 고유한 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왜곡된 작품이 여럿 있다.
지역 소재를 작품화할 경우 역사와 문화 연구가 선행돼야
이처럼 제주 문화를 모르고 작품을 쓰면 꼭 이와 같은 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지역 문화를 작품화할 때는 그 지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지금도 제주에서는 제주 4.3평화문학상과 서귀포문학상 등 여러 상이 있다. 전국 곳곳에서 응모를 하지만 왜곡과 변질이 있을 경우에는 탈락시킨다.
제주 문화는 여러 가지 특색이 있다. 제주는 독립주의적인, 본토와는 다른 고유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유배(流配)문학, 유리 목민관의 유리(遊離)문학, 해양문화와 변방문화 등 태생적, 지리적, 역사적으로 독특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제주 문화를 콘텐츠화할 경우 반드시 제주의 특색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양수근
작가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센터 상주단체 콘텐츠 개발
연극 <나두야 간다> 사례 지역 콘텐츠 개발
2020년 봄,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극단 ‘까치놀’이 광주시 서구문화센터의 상주단체가 되면서 용아 박용철 시인의 일대기를 소재로 작품 의뢰가 왔다. 막상 작업 의뢰를 받고 나니 어깨가 무거웠다. 첫째는 극단 까치놀의 명성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되었고, 둘째는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센터 공연장 상주단체에 좋은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는 점 때문이었다. 서른넷의 짧은 생을 살다간 시인 박용철(1904~1938년)에 대한 자료 조사를 했다. 전라남도 광산군(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에서 만석꾼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용철은 오직 순수문학으로 일제에 저항한 시대의 선각자였다. 그가 없었더라면 ‘모란이 피기까지’의 김영랑, ‘향수’의 정지용과 유치진의 희곡 ‘토막’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사비를 털어 견지동(조계사와 인사동 사이)에 인쇄소 시문학사를 설립하고 『시문학』, 『문예월간』, 『문학』, 『극예술』 잡지를 만들었다. 폐병이 엄습한 죽음 직전까지도 그는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 유학 중 잠시 귀국했을 때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일본으로 가지 않고 방황을 했다. 당시 미두에 투자해 큰돈을 날리기도 했다. 연극은 용철이 돈을 잃고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으로 설정해 작업에 들어갔다.
연극에 패션쇼 접목, 의뢰자와 함께 시놉시스 개발
연출자와 함께 일대기의 특정 시점을 스토리로 구성하되, 1930년대 패션쇼를 극 중간중간에 접목하기로 했다. 국내 최초의 패션쇼를 접목한 연극 <나두야 간다>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일반적으로 의뢰인으로부터 특정 소재가 정해진 콘텐츠를 개발할 때는 시놉시스 단계에서 충분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의뢰인의 의견에만 치우치다 보면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고, 작가 혼자만의 의견으로 작업을 할 경우 의뢰인의 의도가 퇴색되면서 종국에는 작품 전체가 뒤엎어질 수 있다. 때문에 시놉시스 단계에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완성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다.
지역 콘텐츠 개발은 지자체의 지원이 절실
연극 <나두야 간다>는 2020년 12월 첫 공연 이후 2차 공연부터는 시에 노래를 접목하여 음악적 요소를 추가해 업그레이드시켰다. <나두야 간다>는 광주시 서구문화센터 공연장 상주단체 연극으로 개발되었지만 실제로는 박용철의 고향 광산구를 중심으로 더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지역의 특성을 살려서 지역의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행정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토론회
1부 주제 발표에 이어 2부에서는 이은경 연극평론가, 홍원기 작가, 김숙종 작가, 브리즈뮤지컬컴퍼니 손현진 대표 등 패널과 함께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포럼 남정숙 회장이 좌장을 맡아 자유토론을 이어갔다.
이은경 연극평론가
주제가 지역 스토리 콘텐츠인데 지역 콘텐츠로 혼동된다. 여기서 스토리라는 것은 어떤 역사적, 실존적 인물이나 자연 풍광 등 문화적 자원을 기본적인 재료로 해서 쓴 것이 이제 지역 스토리 콘텐츠라고 한다. 지역 콘텐츠는 좀 다른 관점에서 접근을 해야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건표 교수님께 드리는 질문이다. 『동화세탁소』와 같은 작품들을 꼭 대구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냥 다른 지역의 어떤 세탁소 이름을 붙여도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데 이것이 지역 스토리 콘텐츠가 맞는 것인지, 단지 시공간이 설정되어 있다는 의미로 지역 스토리 콘텐츠인지 궁금하다.
또 하나 강용준 관장께서 작가들이 지역 스토리 콘텐츠를 다룰 적에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 이 모든 것들을 잘 리서치하고 온전히 이해해야 된다고 하셨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오해하면 지역 콘텐츠는 지역 사람밖에 못한다는 의미로 확장될 위험성이 느껴진다.
김건표 교수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어떤 지역 소재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알고 사실상 소재 자체가 지역성에 기반으로 한 것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지역 소재라는 것은 지역이 갖고 있는 역사와 인물 등 다양한 콘텐츠가 배경과 기반이 되는 콘텐츠가 돼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갖고 있는 미학성이나 스토리의 한계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좀 더 보편적인 생활이나 현대의 풍경으로 넘어왔던 것이 동화세탁소라는 것이다. 그런데 동화세탁소가 우리 이야기냐, 남의 이야기냐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동화세탁소는 도원동 주민들의 얘기고 그들 삶의 풍경들을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는 현대적인 지역의 생활 풍경도 하나의 지역 소재로서 우리가 봐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말씀을 드렸다. 분명한 것은 지역 소재는 지역의 인물과 역사성, 배경이 근간되어야 한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강용준 관장
인터넷이 발달한 이후로 지역 소재는 이제 더 이상 지역 작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소재들이 영화나 드라마가 돼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에게 전해졌을 때, 그 사람들의 생애나 의식 등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아주 무궁무진한 연구가 우선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례로 제주에는 ‘숨비소리’라는 단어가 있다. 해녀들이 물속에서 2~3분간 숨을 참다가 나와서 내뱉는 소리다. 모 소설에서 숨비소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차용한 것을 봤다. 이렇듯 표피적인 것만으로 작품을 써서는 안 되고, 정말 그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진지하게 그 인물들을 탐구하는 진정성이 있을 때 작품의 완성도도 높아진다. 그것은 지역 작가만이 아니라 타 지역 작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홍원기 작가
문화예술 행정이 분권화되면서 지자체에서 주문 · 생산·보급·공연하는 콘텐츠들이 대부분 지역 안에서만 머문다는 단점이 생겼다. 그 지역 주민들의 문화예술 향유를 위함이지만, 예산과 공력을 들여 만든 콘텐츠들이 지역 주민들만 한 번 보고 끝나는 일회성에 머문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 지역에서 만든 콘텐츠를 다른 지역과 교류해 교차 공연하는 것을 제안한다.
또 지역 문화예술 행정의 폐쇄성은 심각한 문제이다. 지역의 문화예술 부서나 문화재단 등에서 소설이나 희곡 같은 스토리텔링을 공모할 때 붙이는 단서가 있다. 꼭 그 지역과 연관된 소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지역의 것을 찾아내 지역만의 문화 콘텐츠를 발화시키는 것은 마땅하지만 거기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자기 지역만의 인물로 고집 피우는 것은 지양해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자기들만의 독식 자체가 아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지역에서 특화되는 것을 찾아서 하되 다른 지역과도 교류하면 좋겠다. 더 나아가 극작가 협회를 통해 스토리를 콘텐츠로 변환하는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도 좋을것 같다.
좌장
작가의 주체성이 중요하고 실행 주체 조직과 지원 주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고, 또 스토리 콘텐츠의 주체성도 중요하지만 확장성과 공감성, 변환의 미학성도 중요하다는 의견으로 정리를 하겠다.
김숙종 작가
어떻게 작가를 감동시키면 좋은 창작품이 나오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재벌의 사랑 이야기만 다루는 김은숙 작가가 미스터 션샤인을 썼다. 미스터 션샤인을 쓸 수 있었던 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작가들한테 끊임없이 교육을 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작가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과거 독립군들이 얼마나 많은고생을 했는지 배우는 과정에서 김은숙 작가가 감동하여 드라마를 쓰게 됐다고 한다. 작가가 그 지역의 이야기나 콘텐츠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각 지자체나 문화재단 등 지원 주체에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선욱현 이사장
허난설헌 때도 그랬고,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공부를 해야 된다. 10권의 책보다 한 사람과의 인터뷰가 더 나을 때가 있다. 장의사와 관련된 글을 쓴다면 장의에 관한 책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30~40년 장의사를 하신 분하고 마주앉아서 2시간만 얘기 나누면 훅 하고 들어오는 것이 있다. 향토사학자들은 공부는 열심히 하셨는데 그 성과를 펼칠 곳이 많지 않다. 이런 분들하고 우리 작가들이 잘 연결이 되면 그 분들의 지식을 극화시킬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제작 주체들이 연결을 잘 해 주시면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브리즈뮤지컬컴퍼니 손현진 대표
대구는 우리 예술인들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공연 도시라고 생각한다. 지자체의 문화정책과 육성 사업이 활발하고, 문화재단이나 창작 지원 제도들이 지역 예술인들한테 많은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공신력 있는 브랜드 콘텐츠가 나오기는 좀 힘든 상황이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공모 사업으로 지원을 받아 제작된 콘텐츠는 상업적으로 활용이 안 된다. 또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자체 기관의 특성상 공익이 우선돼야 하고, 사회적 경제 가치가 함유돼야 한다. 그렇다보니 발목을 잡는 그런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서울 수도권에 비해서 공연 콘텐츠를 상업적으로 유통하기가 어려운 지역 시장에서는 저희와 같은 실행 주체들이 생계를 위해서 약간 짜맞추기식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일회성 지원 사업의 악순환을 타파하기 위해서 김숙종 작가님 의견처럼 뭔가 지자체가 주체가 돼서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할 것 같고, 홍원기 작가님의 의견처럼 확장성 있는 지역 스토리 개발과 개발된 콘텐츠를 타 지역과 공유하는 부분도 필요해 보인다.
좌장석에 계신 분들
관객 속에 있는 분들 중 두 분께 질문 기회를 드리겠다.
시민
유명작가의 희곡이나 대본은 서점에서 볼 수 있는데, 지역의 연극 대본이나 뮤지컬 대본은 구하기가 어렵다.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김건표 교수
발제자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것이 지역 스토리 교류제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대구에서 소극장 열전처럼 연극을 모으듯이, 스토리를 모으는 낭독회나 토론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좌장
이상 지역 스토리 콘텐츠 개발과 확장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마치겠다. 무엇보다 실제 현장에서 지역 콘텐츠를 개발해 보신 분들의 성공과 실패 이유를 직접 들음으로써 유익한 시간이 됐다. 여러 발표자들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지역 콘텐츠 개발은 단시간에 할 수 없으며, 개발 후에도 단계별로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연속성이 뒷받침돼야 함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