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1장
칼럼
청년예술인, 정책의 주체가 되자!
이창원 (사)인디053 대표
청년예술인, 정책의 주체가 되자!
이창원 (사)인디053 대표
글. 이창원 (사)인디053 대표
피로한 청년, 자발 vs 동원
얼마 전, 한 지자체에서 청년 창작자들과 간담회를 펼쳤다. 로컬콘텐츠 및 청년문화와 관련된 주제로 논의를 하는 자리였는데, 예술인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지역 청년들과 지자체 공무원, 중간지원조직, 전문가들이 함께 모였다.
지자체와 중간지원조직의 관계자들은 지역청년콘텐츠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청년들의 참여가 절대적이며, 특히 그 자리에 참여한 창작자들의 호응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청년들이 지역의 주인공으로 활약해주길 기대하며 많은 지원도 약속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했다. 자리를 주관한 지자체에서는 청년 창작자들이 모인 만큼 젊고 반짝반짝한 아이디어와 참신한 의견이 쉴 새 없이 개진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정작 모인 청년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그때, 한 청년예술인이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이전에도 이런 자리에 많이 불려와 봤습니다.
불려 다닌 사업도 여러 가지였어요.
사업 이름도 다 비슷비슷해서 기억도 안 납니다.
그럴 때마다 행정이나 사업담당자들은 마치 우리가 이야기하면 뭐라도 다 들어다 줄 것처럼 말했는데,
정작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어요. 그냥 청년들 필요하니까 이런 자리만 만들고,
그저 동원만 시켰어요. 오늘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청년정책, 객체화된 청년 vs 얄미운 청년
우리나라에서 청년정책이 시작된 것도 벌써 10여 년이 흘렀다. 대구의 경우 2015년에 청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청년정책의 시동이 걸렸고, 달서구도 지난 2018년 ‘달서구 청년 기본조례’를 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20년부터 시행된 ‘청년기본법’을 통해 청년정책은 법적 기반도 갖추게 됐다.청년예술인에 대한 지원정책 역시 청년정책과 포괄적인 궤를 같이한다. 각 지역마다 청년예술에 대한 이런저런 사업들을 만들고 청년예술인에 대한 지원정책도 펼치고 있다. 특히 지방소멸이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각 지역에서는 ‘청년’이란 존재 자체를 귀하고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그러나 위에 언급된 사례처럼, 현장에서 청년들이 느끼는 반응은 그다지 신통치 않다.
대게의 경우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에 대한 표피적이고 피상적인 접근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니 정작 당사자인 청년세대는 정책 주체로서 자리 잡지 못하고 이미지만 소비된 채 객체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각 지역에서 청년들은 끊임없이 호출되지만 정책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결정적 순간에는 배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은 이런 반복되는 상황이 피로하다.
한편으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들은 점점 늘어나다 보니 소위 사업만 쫓는 ‘청년헌터’들도 많아지고 있다. 지역의 입장에서는 지원금만 빼먹고 도망가는 ‘무늬만 청년’들이 얄밉다. 이미 당해본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을 신뢰하지 못한다.
청년은 기성세대를, 기성세대는 청년에 대해 서로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중고가 현장에서 계속된다. 청년예술에 대한 일들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 지역이청년예술인에게 기회가 될 수 있는 땅이 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단순 세대론에서 미래지향적인 예술론으로 관점 전환 필요
청년예술인 정책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청년예술인의 정의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이다. 명확한 범위를 정하는 것이 애매하다 보니 연령에 따른 구분을 한다. 지역별, 제도별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통상적으로 청년예술인은 ‘만19세 이상 만39세 이하의 전문적인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청년예술인 정책은 대부분 연령에 따른 세대론적 관점에서 추진되어 왔다. 이러한 세대론적 관점의 정책은 다양화 되고 급변하고 있는 시대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청년’을 단순히 물리적인 나이와 세대 특성의 개념으로만 간주하면 연령의 범위가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이로 인한 의미 없는 나이 구분, 다른 세대와의 차이만 부각하는데 과도하게 몰입하는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청년예술인 정책은 이제 미래지향적인 예술론 관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서울연구원과 서울문화재단이 함께 진행한 「서울시 청년예술인 실태 및 지원사업 혁신방안 연구」에서는 청년예술정책의 기본 방향을 ‘새로운 예술발전을 위한 실험과 도전 기회 제공’으로 정하고 있다. 단순 세대론적인 관점에서 예술활동에 대한 지원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관점으로 ‘예술에 대한 실험과 도전이’라는 개념으로 청년예술의 방향을 제시한 것에 적극 동의한다.
이제 청년예술인 정책은 ‘청년=미래세대’라는 시각을 가지고 미래세대의 예술향유권은 물론, 미래세대 예술가들이 자유로운 창작활동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을 언제나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미래세대의 관점에서, 미래세대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설계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진입과 지속, 일시적 지원과 일상적 지원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한 걸음 더 들어가 구체적인 정책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앞서 예시로 든 사례와 같이 현재 청년들을 위한 각종 정책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사업 분야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사업들이 청년들의 사회진입과 정착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청년예술인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인들은 성장단계에 따라 ‘예비-진입-신진-중견-저명’예술인으로 구분된다. 대부분의 문화예술 관련 기관 및 단체들도 이런 정책대상 기준으로 구분하여 실제 예술 및 예술인 지원사업에 적용하고 있으며, 청년예술인의 경우 대개 ‘진입-신진예술인’ 단계의 수준으로 바라보고 정책사업이 만들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청년예술인 정책 역시 청년예술인의 사회적 활동 진입과 예술계 진입을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술계와 사회에 진입하려는 청년예술인에 대한 지원은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청년예술인 정책이 진입단계의 신진예술인 중심으로만 실행되고 있어 그 이후의 창작활동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고려는 부족한 실정이다. 마치 눈앞에 닥친 급한 불을 끄는 데만 급급한 상황이다.청년예술인의 입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자신이 예술인으로서 지속 가능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다. 정책을 예술인의 입장에서 다시 만든다면, 청년예술인에 대한 정책 역시 ‘진입’은 물론 ‘지속성’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진입 중심의 정책이 일시적 지원이라면 지속 중심의 정책은 일상적 지원이라 할 수 있다. 일시적 지원이 공모와 지원사업으로 구성돼 있다면 일상적 지원은 주거, 의료, 복지 등 기초적인 삶을 다루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교육, 연구, 학습, 교류, 네트워크 등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 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예술사업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기존의 일시적 지원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예술인의 삶을 다루는 일상적 지원이 함께 있을 때 청년예술인 정책의 지속성은 담보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앙, 광역, 기초 기관간 역할과 업무도 구분되어야 한다. 중앙의 경우 청년예술인의 창작과 예술활동을 지원한다면, 광역의 경우는 지역사회 교류 등 사회적 자본을 쌓는 것에, 그리고 기초의 경우는 주거, 복지 등 청년예술인의 삶을 돌보는데 각자의 역할과 기능을 충실히 할 것을 바란다.
청년예술인 당사자성을 높인 거버넌스 구축
앞선 내용을 정리하자면 청년예술인의 성장을 위한 지원정책은 새로운 예술에 대한 실험과 도전을 응원하는 것은 물론 열악한 생활과 창작여건을 개선하는 것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청년예술인들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단순 지원의 관점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 가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며, 당사자인 청년예술인들이 청년예술정책 수립의 주체로 등장해야 한다. 특히 청년예술인의 현실과 수요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존 기관주도의 일방적 사업방식에서 탈피하여 청년예술인 스스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시의 경우 2020년 출범한 ‘서울청년예술인회의’를 중심으로 청년예술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서울청년예술인회의’는 청년예술인을 규정하는 제도의 안팎을 오가며 문화예술 현장의 개별화된 목소리를 모으고 서울에서의 청년예술 활동과 관련한 담론 형성 및 정책 제안 플랫폼 역할을 시도하는 거버넌스라 스스로 밝히고 있다. 30여 명의 청년예술인들이 직접 참여하여 라운드테이블, 포럼 등 논의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은 물론 정책에 대한 연구와 아카이빙까지 담당한다.우리 지역에서도 ‘청년예술인(민간) 주도’, ‘공공(행정) 지원’,
‘전문기관(문화재단 등) 협조’ 형식의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예술인 스스로가 정책수립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여 당사자성을 높이고, 관련 기관들의 전문성이 더해서 시너지를 내어야만 점점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예술 현장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청년예술인, 정책의 주체가 되자!
아직까지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는 장르, 학연, 파벌 등을 통해 오랜 시간 동안 구축되어 온 상하 위계질서가 공고하다. 이러한 위계질서는 각종 지원제도와 정책의 결정 과정, 자원의 분배 등 예술 활동 전반에 있어 작동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청년예술인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자리는 마련되기 어렵다. 우리 지역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이제 이러한 과거에서 벗어나 청년예술인들이 우리 지역에서 마음껏 상상하고 실험할 수 있는 예술생태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년예술인들이 스스로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며 운영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예술인들이 정책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창원 │ (사)인디053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