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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나의 인생
춤으로 어르신들께 활력 주고파
무용협동조합 춤날 이승대 이사장
“평소에 억눌려 있던 내 안의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면 그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춤은 자기감정 표현이 서툰 청소년들에게 자기표현의 수단이자, 훌륭한 치유 방안이 되기도 한다.” 무용협동조합 춤날 이승대 이사장의 춤 예찬론이다.
열다섯 살 때 친구 따라갔다가 발레 입문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친구 따라 발레학원을 갔다. 지금도 발레리노가 흔치 않은데 1980년대 발레를 하는 남학생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학원 원장도, 강사도 남자라는 것이 신기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태권도를 해오고 있다는 소리에 학원 원장은 곧바로 발레복을 내밀었다. 처음 접하는 발레였지만 재미있었다. 며칠 후 부모님께 발레를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완강했다. 일주일간 부모와 자식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갖은 협박과 설득에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단식과 침묵 시위에 결국 부모님이 백기를 들었다. 방과 후에는 학원으로 달려가 저녁 수업시간까지 연습을 했다. 무엇보다 몸을 사용하는 방법이 재미있었다. 같은 발차기를 해도 태권도는 골반을 밀어주면서 차지만, 발레는 오히려 골반을 당기면서 발을 찼다. 수년간 태권도를 통해 다리 찢기와 몸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기본이 돼 있으니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부산예고(발레)를 거쳐 부산대학교 무용학과(현대무용)로 진학했다.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바꾼 것은 정해진 틀에 맞춰야 하는 발레보다는 자유로운 현대무용이 더 적성에 맞았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각종 콩쿠르에서 대상을 비롯한 다수의 상을 수상하면서 이승대의 이름을 알렸다. 뉴욕 등 해외 연수를 통해 최신 트렌드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직접 익혔다.
대학 졸업 후 작품 활동을 통해 무용수 이승대의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키고 있을 무렵, 지인으로부터 부산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활동할 것을 권유받았다. 서른한 살 때였다. 트렁크에 옷가지 몇 개만 챙겨 넣고 대구로 올라왔다. 대구시립무용단으로서 새로운 출발이었다. 2010년 수석무용수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고, 9년 동안 몸담았던 대구시립무용단을 나왔다. 시립무용단을 그만두자 주위에서는 앞으로 10년 이상은 더 할 수 있는데 왜 나왔냐고 나무랐다. 이 이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50살이 돼 나오면 뭘 해야 할지 막막할 것 같았다. 10년 일찍 나가서 50대 이후를 준비하자는 생각이었다. 그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국내외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해왔고, 지난 8월 후배 및 제자들과 의기투합해 무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무용협동조합 통해 후배들에게 버팀목이 되고파
과거에는 무용을 전공하면 전문 무용수로 활동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대부분 학원을 차렸다. 하지만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덩달아 무용을 배우려는 아이들 숫자도 줄어서 학원을 개원하기도 쉽지 않다. 전문 무용수의 자리는 적고 수입마저 일정하지 않으니 그만큼 미래가 불안정하다. 그렇다고 수십 년 해 왔던 춤을 그만두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무용협동조합 ‘춤날’을 설립했다. 춤날은 춤으로 나를 일으켜 세운다는 의미다. 비록 당장은 힘이 들더라도 후배들에게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작은 버팀목이 돼주고 싶었다.
춤날은 크게 두 가지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교육과 작품 활동이다. 교육은 시니어와 청소년, 성인 등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며 작품 활동은 지자체나 단체 등에서 특정 주제에 맞는 작품을 의뢰받거나 자체 공연 등으로 할 계획이다.
청소년에게는 자기표현, 어르신에게는 삶의 활력 주고파
청소년은 아무래도 성인에 비해 감정 표현이 서툴고, 행동에 있어서도 제약이 많다. 비단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외에도 억눌려 있는 것이 많을 수 있다. 아이들을 처음 가르칠 때는 반드시 하는 주문이 있다. ‘등을 펴라’다. 청소년기 대부분의 아이들은 무거운 책가방을 메면서 등이 굽어 있다. 무용은 몸이 발라야 제대로 된 동작이 나온다. 그래서 우선 등을 펴는 것이 기본 중에 기본인 것이다. 요즘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필라테스도 무용의 영역이다. 그만큼 무용은 바른 몸을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반면, 나이 드신 어른들은 몸이 굳어 있어 바른 몸을 만들기 어렵다. 대신 평소 생활 속 활동들을 무용 동작으로 재현함으로써 재미와 근력을 키우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설거지 동작이나 화투를 치는 동작을 아주 천천히 무용으로 표현할 수 있다. 또 거동이 불편한 어른들은 기구를 갖고 휠체어에 앉아서 놀이처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무용을 통해 은퇴 후 공원이나 경로당 등 사회 뒷전으로 물러나 있는 어른들에게 생활의 활력과 재미를 주는 것이 목표다. 이른바 춤날이 생각하는 ‘사회적 미션’이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어른들을 무대에 세워 공연을 할 계획도 갖고 있다.
춤은 나의 인생 그 자체
“춤은 나에게 있어 살아왔던 인생이자 살아갈 인생이다.” 이 이사장은 지금까지 몇 번 춤을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춤을 그만뒀을 때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춤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있을 곳은 무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30년 넘게 춤의 인생, 인생의 춤을 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