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1장
인문
과학의 보다, 우리의 보다
글. 임소정 과학커뮤니케이터
올여름, 원래도 평범하지는 않은 나의 경력에 또 하나의 독특한 이력이 생겼다.
‘과학융합 전시 콘텐츠 기획자’ 반려견의 눈에 보이는 세상을 여러 가지 미디어 아트 요소로 구현해서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한 전시를 기획하는 것이었다. 촉박한 준비 기간과 제한된 예산으로 준비 기간 내내 조마조마했지만, 전시에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나는 이 전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서 정말 기뻤다. 사실 이 전시는 15년 묵은 내 오랜 아픔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그 시절의 나와 같은 실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남은 생을 나처럼 죄책감으로 후회하며 살지 않도록, 내가 깨달은 것을 나누고 싶었다.
내 마지막 반려 동물, 또치
몇 해 전 겨울, 수성구립 고산도서관으로 강연하러 가던 날,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서 나는 무너졌다. 타고 있던 택시가 어떤 동물병원을 지났는데 그곳이 바로 15년 전, 내가 키우던 고슴도치, ‘또치’를 데리고 다녔던 병원이었다. 칠곡에 살던 대학생이 알바로 모은 전재산을 다 썼지만 또치가 이상하단 걸 알아챘을 때, 녀석은 이미 시한부였다. 며칠을 울면서 좀 더 사랑해줄걸, 잘해줄걸…. 의미 없는 후회와 자책을 반복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의심이 머리를 쳐들었다. ‘모든 것이 내 착각이었다면?’ 내 새끼처럼 아낀다면서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주제에 도대체 뭘 잘해줬다는 거지?’ 또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건 그저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에 엄청난 죄책감이 생겼고 그 이후로 더는 동물을 키울 수 없었다.
사랑이 맞아?
정해진 이별을 알고 있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사랑과 행복이 있던 자리에 자꾸 끔찍한 감정들이 머리를 디민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이별을 앞둔 푸바오 할아버지, 강철원 사육사는 어느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육사는 동물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 말은 내 15년의 죄책감과 맥이 닿아 있었다. 나의 진심과 사랑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 까닭 또한 내가 이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산책하는 개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개를 산책시키던 보호자들. 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고 있겠지. 그리고 개가 떠난 뒤에 나와 같은 후회를 하지는 않을까.
우리의 ‘보다’
한동안 나는 ‘보다’라는 단어에 꽂혀 있었다. 생각할수록 매력적인 단어다. ‘보다’의 사전적 정의는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 말을 더 근사하게 쓴다. 생각이나 가치관 등을 말할 때도 우리는 ‘본다’는 표현을 쓴다. “나는 이렇게 봐.” 이 말이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누군가의 견해를 뜻하는 관점이라는 단어도 볼 관(觀)자를 쓴다. 이 본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뜯어보면 더 흥미롭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같은 것을 보고 있을까?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미지는 뇌에서 만든 것이다. 사물에서 반사된 빛이 눈알을 지나 시신경을 타고 뇌로 전달된다. 뇌는 과거의 경험 등을 적용해서 빛의 정보를 이미지로 만든다. 우리는 그것을 본다.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어도, 우리는 결코 같은 것을 볼 수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일을 ‘그의 입장이 되어 본다’라고 하는데 만약에 우리가 정말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는 여기서 ‘타인’을 ‘반려견’으로 바꿨다. 가족이며, 가장 가까운 존재, 종은 달라도 나와 교감하는 존재. 그들이 보는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분명 그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과학의 보다
과학의 ‘보다’에 대한 설명은 태양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생물들은 그 생존이 태양에 달려있다. 태양은 대기를 움직여 계절을 만든다. 식물은 햇빛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물과 이산화탄소를 당분과 산소로 바꾼다. 먼 과거의 우리들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태양이 필요했다. 태양빛은 생물이 거저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태양만이 세상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던 시절, 그 빛을 더 잘 인식하여 대응할 수 있는 생물들이 생존에 유리했다. 단순히 태양빛을 인식하는 세포 덩어리였던 원시 눈은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복잡한 구조와 높은 수준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사는 환경과 조건이 다른 동물들은 각자 유리한 형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눈을 갖게 되었다.
사람의 눈, 개의 눈
사람의 눈과 개의 눈은 몇 가지 차이를 가진다. 눈이 신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인간은 멀리 보는 것을 잘한다. 냄새를 맡기 위해 줄곧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개의 눈은 가까이 보기에 적합하다. 실제로 개는 심한 근시다. 대신 빛의 밝기를 인식하는 막대세포는 개가 사람보다 훨씬 많다. 어두운 밤, 우리가 아무것도 보지 못할 때 개는 본다. 색깔의 구분은원뿔세포가 담당한다. 원뿔세포들은 각기 다른 색을 인식하는 색소 세포를 가지고 있는데 사람은 빨강, 파랑, 초록 파장대의 빛을 인식하는 3가지 원뿔세포를 가져서 그 조합으로 알록달록한 무지개를 볼 수 있다. 반면, 개는 파랑과 노랑을 인식하는 2가지의 원뿔세포만을 가져서 노랑, 파랑 두 가지 색의 범위만 인식한다.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개의 눈에 보이는 세상과 사람의 눈에 보이는 세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서 전시해 두었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반려인이었고, 많은 분들이 감동을 느끼거나 반성하거나 눈물을 흘리셨다. 특히 갤러리 1층에 비치해 둔 대형 스크린에 특수 촬영과 편집 기술로 만든 영상 ‘너의 산책길’을 틀어두었다. 용산역에서 갤러리까지 오는 길을 산책하는 개의 시점으로 찍은 영상이다. 사람들은 개를 안고 5분짜리 영상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동안 그 앞에 서서 하염없이 보고 또 보았다.
모든 곳에 있는 과학
그들에게 나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반려견을 보는 그들의 눈이 달라진 것을 보았다. 많은 이들이 과학을 지식으로만 대하지만 나는 과학에 온기가 있음을 안다. 과학적 지식을 많이 알면 삶을 더욱 충실히 느끼고, 더욱 너그러운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문명의 이기가 아니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과학이다. 나는 그렇게 본다.
임소정 과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