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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나의 영원한 캔버스
서양화사 김윤종
자동차를 몰고 가다 신호등에 걸려 대기하던 중 차창 밖으로 하늘을 보니 구름의 형태가 마음에 들었다. 흔하지 않은 멋진 구름이었다.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운전해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을 찾아 차를 세우고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렸을 때는 구름은 이미 모양이 바뀌어 있었다.
16년째 구름과 푸르른 창공 소재 「하늘보기」 수도 없이 그려
1986년 대학을 졸업한 후 집이며 직장이자 작업실인 화실에서 생계를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1990년이 저물어갈 무렵 교육대학원을 나온 대학동기가 교육청에 임용고시 원서를 내러 간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해 응시했다. ‘어차피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작품 활동을 해야 될 형편이라면 차라리 교사가 돼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작품 활동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원서를 내고 나니 시험까지는 20여 일 남아 있었다. 매일 학생들이 돌아간 밤 10시가 되면 화실 문을 닫고 새벽이나 아침까지 시험 준비를 했다. 시험은 합격했고, 1991년 봄부터 교직에 들어섰다. 그 후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처음에는 한 5년만 다니다가 그만두고 작업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정을 책임져야 했다. 낮에는 교사 밤에는 작가의 일상이 계속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 활동에 대한 갈증은 증폭됐지만 29년이 흐른 뒤에야 교문을 나설 수 있었다.
변치 않는 자연 담고자 「하늘보기」 그려
어느 날 스케치를 위해 찾았던 곳이 개발되면서 과거의 모습은 오간 데 없었고, 빈손으로 돌아서야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 ‘변치 않는 원초적 자연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차창 밖으로 푸르른 창공과 구름이 보였다. 그렇게 연작 「하늘보기」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구름 필력(筆歷)만 16년째다. 그동안 그린 작품 수는 헤아릴 수가 없다. 가히 ‘구름의 화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화가에게 있어 구름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구름은 나의 영원한 캔버스”였다. 16년째 구름을 보고 그렸으니 표현하는 방법도 변했다. 초창기 구름을 그릴 때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자상했다. 언제, 어디서 본 구름인지를 드러내려고 했다. 구름 속에 계절과 시간을 짐작할 수 있는 색감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필요 이상은 타인의 몫으로 건네고, 수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구름을 관람객의 눈높이로 가져다주기만 한다. 마치 눈앞의 정물화를 보는 듯하다. 감상함에 있어 시선처리가 부담이 없다. 굳이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보인다. 문득 하늘을 쳐다봤을 때 그저 구름이 보이는 것처럼.
「하늘보기(22-25)」 290.9×181.8cm
oil on canvas 2022
「하늘보기(22-17)」 112.1×162.2cm
0il 0n canvas 2022
물성 살리는 데 역점… 마음의 위안 주고파
구름을 표현하는 데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물성’이다. 구름은 0.25g 무게의 수많은 물방울과 공기로 구성돼 있고, 책 ‘구름의 무게를 재는 과학자’에서는 보통의 뭉게구름(적운)은 그 무게가 500톤으로, 코끼리 100마리의 무게에 해당한다고 한다. 엄청난 무게를 가진 구름이지만 창공을 유영하듯 떠다니고,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꾼다. 화가는 이런 구름의 물성을 표현하기 위해 수십 번의 터치로 한 올 한 올 구름의 결을 빗고 음과 양을 극도로 세분화해 형태를 빚는다. 구름의 가운데는 솜털처럼 포근하고 가장자리는 미세한 물방울로 산산이 흩어질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그래서 화가의 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살아 있는 듯 미세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시간이 지나면 형태가 변할 것만 같다. 지극히 한가로운 평온함을 가져다준다.
화가는 봤을 때 마음을 어지럽히거나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는 구름은 그리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화가는 “현대인은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고민거리가 있을 때 옥상에 올라 먼 하늘을 쳐다본다. 구름과 창공은 답답한 마음을 뚫어주고,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며 “「하늘보기」를 통해 위안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달서아트센터 통해 밤하늘 처음 선봬
최근 화가는 밤하늘을 그리기 시작했다. 8월 11일까지 진행되는 달서아트센터 개인전을 통해 처음으로 밤하늘 신작들을 선보였다. 달서아트센터 갤러리 1층에 있는 전시실을 들어서면 우측에는 낮 좌측에는 밤하늘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대형 작품들이 가득 걸려 있다. 기존의 낮하늘이 사실적인 모습에 작가의 감정이 덧칠해졌다면, 밤하늘은 어릴 적 고향 영양의 밤하늘이 추상적으로 되새김질돼 있다. 낮하늘이 작가의 주관적 감정이 개입돼 있다면, 밤하늘은 관람객 각자의 추억과 상상의 여지를 주는 것이 특징이다. 낮하늘이 힐링이라면, 밤하늘은 동경이다. 낮이 현실이라면 밤은 이상이다. 화가는 “기존의 「하늘보기」와 대비되는 밤하늘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서로가 더 빛날 수 있고, 관람객들은 마음의 위안과 동경이라는 감정의 유희를 동시에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