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달서 바이브②

MOON LIGHT

달빛으로 물든 세계사

매일 밤 두둥실 떠올라 까만 밤하늘을 은은하게 비추는 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달은 인간의 바람 을 투영하는 신비로운 존재임과 동시에 영감의 원천이었다. 눈에 보이지만 닿을 수 없다는 현실에 달을 어여삐 그리고 애틋하게 여겼던 사람들. 우주선을 쏘아 올려 끝끝내 달을 정복한 지금에도, 달은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상상력의 보고다. 수천 년 전부터 인문, 문화, 예술에 녹아들어 우리를 울고 웃게 한 달과 달빛의 의미를 천천히 되짚어 본다.

소설

예술을 향한 갈망과 현실 사이의 달

달과 6펜스

20세기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는 ‘나’의 시선으로 한 예술가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평범하고 무뚝뚝한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나이 40세에 그림을 그리겠다며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파리로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파리에서 그는 바닥의 끝을 경험한다. 가난하고도 처절하게.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응원한 사람들을 망가트리고, 상처주면서도 그는 죄책감 따위 느끼지 않는다. 파리에서 타히티로 건너가 어린 여성과 결혼하게 되지만 결국 그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제목에서 언급된 ‘달과 6펜스’는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물질의 가치를 추구하는 세속의 현실을 의미하는 6펜스와 달리, 달은 미학을 동경하는 예술의 세계, 현실 저 너머의 이상 세계를 상징한다. 작가는아득히 먼듯하지만 눈에 보이는 그 거리감을 이상과 동경의 은유로써 ‘달’로 표현한 것이다.

공연

달빛 아래에서 시를 노래하네

시를 노래하는 달빛콘서트

달서의 가을은 유독 서정적이며 시적이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2018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시를 노래하는 달빛콘서트’가 가을마다 월광수변공원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문학과 음악 그리고 월광수변공원의 정취가 어우러진 공연은 지역민들에게 가을밤의 추억과 낭만을 선사한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시 문학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달빛 아래 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지역민들이 일상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한다. 월광수변공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시를 노래하는 달빛콘서트’는 감미로운 시와 노래가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를 한아름 안겨준다.

클래식

달빛에 감춰진 슬픔과 기쁨의 멜로디

드뷔시 ‘달빛’

프랑스 작곡가이자 인상주의 음악의 대부 그리고 창시자로 불리는 드뷔시가 1890년에 발표한 피아노 독주곡 가운데 ‘달빛’이 있다. 시인 폴베를렌이 쓴 시 ‘하얀 달’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곡이 ‘달빛’이다. 이 곡은 다수의 영화, 음악에 삽입되어 대중들에게 익숙한 멜로디다.

환한 달빛은 겉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그 이면은 보이지 않기에 감춰진 모습을 지니고 있다. 드뷔시의 ‘달빛’도 따뜻한 달빛 뒤에 감춰진 슬픔이 함께 느껴지는 곡이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며 세상을 밝혀가듯 드뷔시의 곡이 귓가에 맴도는 동안 감정의 진폭이 커져간다.

서양화

밤하늘을 환히 밝히는 달의 그림

빈센트 반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빈센트 반 고흐는 달과 별의 화가라고도 불린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달과 별이 안겨주는 은은한 정취가 잘 드러나 있다. 대중들에게 친숙한 그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에’는 고요해 보이는 마을과 대비된 밤하늘의 환한 달과 별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마치 소용돌이치는 듯한 별들 사이에서 그보다 크고 환한 달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반 고흐의 작품 ‘사이프러스 나무와 별이 있는 길’에서도 달을 찾아볼 수 있다. 프로방스의 상징인 사이프러스나무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별과 초승달이 밤하늘을 은은하게 밝힌다. 별과 달이 고즈넉한 시골길의 풍경을 더욱 낭만 있게 만드는 장치로써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

한국화

달빛 아래, 비밀스런 사랑

신윤복 ‘월하정인’

혜원 신윤복은 유독 달을 사랑했던 조선시대 화가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 함은 은밀하고, 내밀하며 낭만적이다. 이런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이 오가는 사랑의 감정을 화폭에 담기 위해서는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다. 신윤복은 달을화폭에 담았다.

그의 대표작 중 유명한 ‘월하정인’에는 특이한 형태로 엎어져 있는 달이 그려져 있다. 한여름 밤 부분 월식의 한 장면을 그려 넣은 것이라는 추측이 있는가 하면, 달빛 아래 서 있는 여인의 둥근 눈썹과 닮은 눈썹달이라는 설도 있다. 그것은 그림을 그린 신윤복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어두운 밤, 남자와 여자그 둘의 비밀스런 만남을 은밀히 비추는 달빛은 무르익은 밤의 정취를 잘 표현하고 있다.

도예

흙으로 빚어낸 달

달항아리

달을 유달리 사랑하는 우리 민족은 전 세계 유례없는 순백의 거대한 달항아리를 만들어냈다.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을 지닌 모양이 달덩이 같다고 해서 달항아리라 이름 붙었다. 투명한 백자유가 씌어져 있어 은은하고 맑은 흰빛을 띠는 게 특징이다. 조선백자의 미를 가장 잘 나타내는 항아리로도 손꼽히는 게 달항아리다. 1,300도 이상의 고온 가마에서꼬박 하루를 거쳐야 말간 달의 형태를 만날수 있다. 어떤 문양이나 조각도 없이 둥근 형태만으로도 아름다운 자태를 지녔다.

유려한 곡선 그리고 한 치의 꾸밈 없는 형태와 넉넉한 볼륨을 지닌 달항아리는 풍년과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달의 모습을 담은 달항아리는 현대에도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오브제나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사랑받는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장 성화대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