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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파격의 연주, 유자 왕 첫 내한 피아노 리사이틀
– 6월 15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달서아트센터 청룡홀 –
이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유자 왕(Yuja Wang, 王羽佳)의 리사이틀이 지난 6월 15일(수) 달서아트센터 청룡홀에서 개최됐다. 이번 공연은 달서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DSAC 시그니처 시리즈로 해마다 국내외 최정상급 아티스트를 초청해 명품 공연을 선보였다.
‘The One and Only’ 독보적인 피아니스트, 유자 왕
“유자 왕의 수월한 기술적인 해석, 색채의 범위 그리고 순수한 힘의 조합은 항상 놀랍다… 그러나 최근에는 점점 더 깊이있는 음악성을 드러내며, 즉각적이면서도 매력적으로 각 작곡가의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 파이낸셜 타임즈
20세기에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있었다면, 21세기에는 유자 왕이 있다. 유자 왕은 2007년 컨디션 난조로 무대에 오르지 못한 건반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대신해 샤를 뒤투아가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에 오른 후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오늘날 전설의 아르헤리치를 이을 여류 피아니스트로 언급되고 있다. 유럽 아티스트들이 대부분인 클래식 시장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아시안 피아니스트였던 그녀는 그 무대 이후 2년 만에 도이치 그라모폰과 독점 계약을 맺었다.
이후 모든 음반과 무대에서 평론가들의 극찬을 이끌어내며 클라우디오 아바도, 다니엘 바렌보임, 발레기 게르기예프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에게 협연자로서, 또 저명한 공연장의 솔리스트로서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얼마나 화려한 테크닉과 깊이 있는 해석으로 새로운 음악을 선사할지 모든 면에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유자 왕의 내한 리사이틀이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성사되었다.
달서아트센터에서 가장 먼저 만나본 유자 왕의 피아노
유자 왕은 보수적인 클래식 공연계에서 파워풀하고 화려한 자신만의 연주력으로 당시 팽배했던 아시안 연주자에 대한 편견을 깨고 미주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관객들을 전율케 했다. 괴물 같은 테크닉과 깊이 있는 해석, 관중들의 혼을 빼놓는 무대 매너까지 모두 갖춘 유자 왕은 그 어떤 피아니스트들도 대신할 수 없는 끝없는 매력으로 전 세계 모든 대륙을 아우르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2019년 LA필하모닉 100주년 기념 페스티벌에서 구스타보 두다멜과 함께 내한해 한국 관객들과 가진 짧은 만남으로 아쉬움을 남겼던 그녀가 달서아트센터를 시작으로 첫 내한 공연을 선보였다.
파격의 연주로 기립박수 받은 유자 왕의 프로그램
유자 왕은 지난 4월 뉴욕의 카네기홀 공연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도 연주할 프로그램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을 정도로 연주곡목 공개에 신중을 기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녀는 이번 내한공연에서도 파격적인 프로그램 공개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큰 놀라움을 안겼다. 공연 시작 전 안내방송을 통해 프로그램 변경 사실을 알린 것이다.
“본 공연의 프로그램이 연주자의 요청에 의해 변경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을 작곡가, 시대, 스타일 등 정해진 틀 안에서 감상하기보다는 음악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즐겨 주셨으면 하는 연주자의 의견에 따라 변경된 프로그램은 공연 후 안내 드릴 예정입니다.”
안내 방송 후 술렁이는 객석을 뒤로하고 입장한 유자 왕은 특유의 90도 폴더인사로 관객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켰다.
잠시 후 건반 앞에 앉은 그녀가 첫 연주로 들려준 곡은 슈베르트 가곡집 중 리스트가 편곡한 ‘사랑의 소식’이었다. 이어서 안식처, 마왕을 선보였는데 아름다운 선율과 거침없는 강렬한 연주는 청룡홀을 가득 채운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뒤이어 쇤베르크의 피아노 모음곡 작품번호 25, 슈베르트의 헝가리안 멜로디 B단조 D.817, 리게티의 에튀드 6번 ‘바르샤바의 가을’과 13번 ‘악마의 계단’을 들려준 다음 1부를 마무리했다. 예측불허의 선곡은 청중들의 궁금증을 유발했고, 곧 있을 2부 연주를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 3번으로 시작해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G단조, 장 필리프 라모의 ‘야만인들’을 연주했고, 알베니스의 이베리아 모음곡 제3권 3번 ‘라파비에스’를 마지막으로 본 공연을 마쳤다. 2부에서도 거침없이 펼쳐지는 유자 왕 특유의 에너지와 테크닉을 선보였고, 관객들은 환호를 보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녀의 파격적인 행보는 앙코르에서도 이어졌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으로 시작해 마르케즈의 ‘단존 2번’, 바흐의 ‘바디느리’, 리스트의 ‘샘가에서’, 카푸스틴의 ‘토카티나’, 글래스의 ‘에튀드 6번’,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7번 3악장’까지 무려 7곡이나 연주했고, 그녀의 열정 넘치는 연주에 빠져든 관객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오늘을 즐기는 그녀의 모습이 새겨진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기립박수로 막을 내렸다. 성황리에 마친 이번 공연은 유자 왕이 연주 외적인 파격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페스티벌 등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초청받고 환영받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자리였다. 국내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유자 왕의 다음 내한 공연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