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Column

지속가능한 문화예술을 위한 노력

연극 기후비상사태: 리허설 중심으로

글. 연극연출가 전윤환
코로나19와 기후위기가 가져다 준 새로운 과제

코로나19로 인해 공연 예술계는 관객을 만나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극장을 열지 못하거나, 제한된 관객을 만나거나, 온라인 매체를 통해 작품을 송출하는 등 처음 겪어 보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인류에게 찾아온 코로나19는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온 방식에 대해 잠시 멈추고 질문해야 하는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인류는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결국 코로나19라는 전염병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기후위기’는 이러한 시기와 맞물려 인류 최대의 의제로 급부상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는 본질적으로 지나친 개발과 간섭, 무한성장주의, 인간중심주의가 만들어 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작년 6월 국립극단으로부터 ‘기후위기’에 대한 연극을 제작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기후위기’를 주제로 연극을 만들자고? 연극을 쓰고 연출하는 나에게 기후위기가 갑자기 찾아왔다. 오래전부터 과학자들과 활동가들은 끊임없이 경고해 왔다. 그럼에도 인류는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늦추어 왔고, 지구 온도를 1도 올려놓았다. 0.5도가 더 높아지면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이한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지금처럼 탄소 배출을 하면 회복 불가능한 시간까지 7년 남았다고 보고 있다. 7년? 7년이라니…
나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기후위기 관련 자료를 섭렵해 나갔다. 대기과학자 조천호 박사를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조천호 박사는 “과학은 원인과 예측의 근거를 찾는 일이고, 설득은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덧붙여 이만큼 기후위기 의제가 급부상한 것도 청소년 기후활동가인 그레타 툰베리가 금요 결석 시위를 하고, 세계 정상들에게 경고하는 등의 스토리텔링이 갖는 힘 덕분이었다고 말하며 기후위기에 대한 많은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 했다. 갑자기 찾아온 이 과제에 대해 ‘예술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IPCC 1.5도 특별 보고서>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인도 작가 아미타브 고시는 “기후위기는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라고 말했다. 상상력의 부재, 언어의 부재를 기후활동가들부터 기후위기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예술가들까지 통감하고 있다.
기후위기라는 거대 서사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기후활동가들은 기후위기를 지구 밖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가 아파요’, ‘지구를 위해서’, ‘지구의 멸망’ 등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관점이라고 이야기한다. 기후위기로 인해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 인간이 멸종할 뿐이다. 기후위기라는 거대 서사를 미시적 관점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지구 안에 살고 있는 ‘나’의 관점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기후위기를 감정으로 말하고, 기후위기를 감각으로 느끼게 할 수 있는 예술이 필요하다. 기후위기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감각할 때 비로소 기후위기 당사자로서의 고민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극에 관한 희곡 여덟 편을 쓴 샹탈 빌로도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 서사와의 작별을 고민하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구조는 선형적이고 피라미드식 구조를 갖고 있다. 엔딩에 도달하기 위해 장애물을 만나고 이를 헤쳐 나가는 한 캐릭터가 존재한다. 주인공은 일종의 정복자 마음으로 이 복잡한 세계에서 단 하나의 서사만을 끌고 나간다. 그녀는 아리스토텔레스적 피라미드식 구조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계관이 닮아 있고, 이 세계관의 문제가 기후위기를 통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피라미드식 구조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의 인류는 착취의 계급사회, 즉 피라미드식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구조로 인간이 인간을, 인간이 동물을, 인간이 생물을,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고 있으며 기후위기는 이러한 착취와 폭력, 불평등의 구조를 통해 나타난다. 나는 샹탈 빌로도의 인터뷰를 통해 탈 인본주의, 탈 아리스토텔리스 구조, 비인간 서사, 비선형적이고 원형적인 구조에 대해 고민하고 싶어졌다. 기후위기를 다루는 예술에서 작품의 형식까지 기존의 관습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국내 처음으로 에코드라마트루그 도입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을 제작하면서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이 있었다. ‘에코드라마트루그’라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역할을 도입한 것이었다. 프로듀서 그룹 DOT의 박지선PD가 이 역할을 국내 최초로 수행하였는데 대본, 연출, 기획, 홍보, 제작 모든 파트를 생태적 관점에서 고민하는 역할이었다. 사전 워크숍 단계에서 기후위기 관련 교육을 기획하고, 영국의 ‘The Theatre Green Book1’ 사례를 프로덕션과 살펴보고, 국내외 기후위기 관련 예술에 대해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박지선 에코드라마트루그의 제안으로 프로덕션을 시작하면서 ‘우리들의 약속문(文)’을 만들 수 있었는데 우리들의 약속문에는 제작에서 발표까지 모든 과정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실천으로 친환경, 저탄소 작품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동의와 실천 항목들이 있었다. 이러한 제안들 덕분에 제작과정에서 파트별로 여러 시도들을 할 수 있었다.

창작 과정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시도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을 제작하면서 파트별로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고민을 하며 창작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 시도들을 공유해 본다.
무대는 최대한 국립극단에서 보유한 대도구를 사용했다. 새로운 제작을 최대한 줄이고, 제작을 하더라도 재사용이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공연 후 폐기물품을 만들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가능한 도색을 하지 않았다. 조명은 백열등 조명을 30% 줄이는 것을 목표로 LED 조명을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하였다. 의상은 국립극단 의상실에 있는 기존 의상과 개인 옷을 활용하여 제작과 구매 없이 진행하였다. 또한 식물성 세제를 활용해 세탁을 진행하였다. 음악, 음향은 적은 전력으로 높은 출력을 확보하고자 하였으며 소리 채집을 진행하면서 불필요한 이동 동선을 최대한 줄이고 대중교통과 친환경 차를 이용하였다. 분장은 분장 재료 선택에 있어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재료와 비건 재료를 사용하였다. 홍보물 제작 과정에서도 프로그램북, 포스터 제작에 있어 친환경 용지와 콩기름 잉크를 활용했다.
또한 지속가능발전경영센터와 협업하여 제작 과정, 공연장, 관객 이동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을 계산하였다. 각 파트별로 지속가능한 창작을 위해 목표를 정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과정의 기록이 국립극단 홈페이지를 통해 기후 노트라는 이름으로 공유될 예정이다.

  1. 극장 제작자와 지속가능성 전문가를 모아 극장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공통 표준을 만든 책이다.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1권 지속가능한 생산, 2권 지속가능한 건물, 3권 지속가능한 운영에 대해 다루고 있다.

기후비상사태: 리허설 사진 나승열, 제공 국립극장

네트워크를 통해 기후 우울증(Climate anxiety) 극복

기후위기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면 창작자는 ‘기후 우울증’에 빠지는 과정을 겪게 된다. ‘내가 만드는 작품이 탄소발자국을 더 만들지 않나’라는 생각에 빠지거나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우울감에 빠지기도 하는데, 이때 기후위기에 대해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 우울의 과정을 잘 돌보며 헤쳐 나와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예술을 찾아 나가는 것, 그래서 기후위기에 대한 의제를 감각화시키는 것, 이 논의를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더 확장시키는 것이 우리가 해나가야 할 일이 아닐까. 기후위기에 대한 더 많은 상상, 더 많은 언어를 만나고 싶다.

기후비상사태: 리허설 사진 나승열, 제공 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