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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지킴이의 아름다운 퇴장

이옥례 주임

그동안 작은도서관을 운영했던 이옥례 주임이 지난 6월 정년을 맞아 퇴임했다. 이 주임은 달서문화재단 설립 후 1호 정년퇴임자로, 2005년 8월 탁아실 교사로 처음 재단과 인연을 맺었다. 퇴임을 맞아 그동안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첨단문화회관 시절 보육교사로 시작
2005년 8월 첨단문화회관(달서아트센터 옛 명칭)탁아실 보육교사로 처음 근무를 시작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수영 등 아카데미 강좌를 수강하는 수강생들이나 공연을 관람하러 오는 관객들이 아이를 동반해 오면 강좌나 공연이 끝날 때까지 아이를 맡아주는 탁아실이 있었다. 보통 0~5세의 어린 유아들이었다. 하지만 출산율 저하와 함께 수강생들의 연령대도 높아지면서 아이를 동반한 수강생은 갈수록 줄었고, 탁아실도 덩달아 유명무실해졌다. 결국 2016년 2월, 탁아실이 문을 닫았다. 그 무렵 첨단문화회관의 운영 주체도 구청에서 문화재단으로 옮겨져 있었다.

한가해 보여 부러움을 사지만 책 한 권 정독 못 해봐
2016년 3월 3층의 작은도서관으로 처음 출근했다. 아이들을 좋아해 20대 초반에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에서 아이들하고만 30년가량 같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도서관 일을 하게 됐다. 단지 사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행정업무를 포함해 도서관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일이었다. 처음 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꼼꼼하게 업무를 파악해 나갔다. 시간이 지나자 일은 익숙해졌고, 이용객들의 ‘부러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은연중에 그런 시선으로 바라봤다. 또 몇몇은 대놓고 ‘좋은 직장에 근무하시네요’라고 하거나 ‘가만히 앉아서 읽고 싶은 책 읽으면서 월급 받으니 천하의 보직’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탁아실에 근무할 때는 3층에 올라와 자주 책을 빌려 읽기도 했었지만 정작 도서관에 근무하니 책 한 권 정독하기가 어려웠다. 매일 점심 전까지는 자리에 앉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주민들과의 대여, 반납 업무, 도서관들과의 상호대차 업무를 하고 나면 오전은 후딱 지나간다. 또 도서대여 외에 프린터와 컴퓨터 등 사무용기기와 관련된 이용객들의 요구사항도 여러 가지다. 특히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곳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전화가 와서 못 받으면 바로 재단사무실로 전화가 간다. 그리고는 ‘오늘 도서관 문 닫았느냐’고 확인한다.

요구사항 많은 고객 더 친절하게 대해 불만사항 원천 차단
아이들을 좋아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주로 해왔지만 도서관도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이 주임이 오기 전 작은도서관에는 젊은 기간제 직원들이 근무했었다. 그들은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은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이용객의 사정은 관심 없고, 오로지 규칙만 강요했다. 그러다 보니 불만을 가진 이용객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 주임은 달랐다. 정해진 규칙을 최대한 지키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경우 전후좌우를 살핀 다음 자신이 책임지고 예외를 인정해 주기도 했다. 또 전임자로부터 전해들은 요주의 인물(요구사항이 많은 고객)에게는 오히려 더 친절하게 대했다. 당연히 이용객들과의 관계는 좋았고, 6년 넘게 근무하는 동안 불만사항 접수가 단 한 건도 없었다.

도서관 책은 ‘내 책’이 아니라, ‘예술품’ 보듯 봐야
도서관을 이용하는 주민들 중에도 간혹 도서관 책을 자기 책처럼 보는 사람이 있다. 연필이나 볼펜 등으로 밑줄을 긋거나 형광펜으로 칠하기도 한다. 연필로 그은 것은 지우개로 지우면 되지만, 볼펜이나 형광펜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대여목록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용의자(?) 확인하고 물어보지만 대부분 본인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반납된 도서를 일일이 모든 페이지를 확인하기 어려우니 정확하게 누가 그랬다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 낙서 수준은 확인하기도 어렵고, 책의 손상정도가 작아 새 책으로 구입해 주라고 요구하지 않지만 음식물이나 커피 등 음료로 책을 손상했을 경우는 범인(?)을 찾아 새 책으로 보상받은 적도 몇 번 있다.
이 주임은 “책을 읽다가 중요한 문장이 있으면 눈과 머릿속으로 밑줄을 긋되, 책에다 밑줄이나 색칠을 해 다음에 읽는 독자가 인상을 찌푸리거나 선입견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도서관의 책은 공공의 재산이고, 여러 사람이 보기 때문에 예술품 대하듯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이들 좋아 숲 해설사로 새롭게 인생 3막 준비
공교롭게도 탁아실이 문을 닫게 돼 도서관으로 옮겼고, 도서관이 문을 닫을 무렵 정년을 맞았다. 정년을 맞은 것은 시원섭섭하지만 도서관이 없어지는 것은 못내 아쉽다. 작은도서관이었지만 그래도 그 곳을 사랑방 드나들 듯 자주 이용하던 주민들을 생각하니 더욱 그러하다. 아트센터 내 작은도서관은 6월 말까지 운영됐고, 독도메타버스로 새로 문을 열 계획이다.
도서관이 새롭게 변모하듯이 이 주임도 새로운 인생 3막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유치원협회에서 진행하는 숲 해설가 자격증을 따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식물공부에 여념이 없다.
이 주임은 “아이들에게 꽃과 나무 등을 해설해주는 숲 해설가가 개인적으로 잘 맞겠다는 생각에 도전했다”며 “도서관에 있을 때는 책을 못 읽었는데, 나오니 이렇게 책을 열심히 읽게 된다”라고 웃으며 말했다.